[정몽헌회장 사재출자 '결단'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현대가 정몽헌 회장의 사재 출자와 비상장 계열사 주식 담보제공을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4일 현대 고위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대 정몽헌 회장이 결단을 내린 시점은 3일 오후 9시께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과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회장과 김본부장이 정회장에게 사재출자의 불가피성을 '진언'한 때는 2일 오후 늦게였다. 이날 오후 계동 사옥에서 목격된 정회장은 힘이 빠져 어깨가 처진 상태였다.

정회장 측근 인사들은 "정회장이 상당히 예민한 상태"라고 전했다. 사옥 1층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비상 출입구를 활용해 외출을 하기도 했다.

정회장은 현대투신 문제가 경영상의 잘못으로 인한 문제가 아닌데 왜 사재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회장과 김본부장은 현재의 상황이 마냥 버티기 어려운 만큼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놓고 사재출자와 담보제공의결단을 내릴 것을 계속 건의했다.

정회장은 3일 오전 집무실에 혼자 앉아 고심을 거듭했다. 정회장 집무실 현관은 평소와 달리 굳게 닫혀있었다.

이익치 회장과 김재수 본부장은 3일 오후 정회장의 집무실을 찾아가 더이상 결단이 늦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의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자칫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현대 전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회장과 김본부장은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이회장과 김본부장은 측근들에게 "오너에게 사재를 내놓으라고 건의하는 일을 하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드디어 오후 9시께 김본부장은 구조조정본부 중역들에게 전화를 걸어 "4일중 발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정회장이 결단을 내렸음을 의미한 말이었다. 김본부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정회장이 사재출자를 결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으나 담보제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현대 안팎에서는 3일 밤과 4일 아침 정부반응이 신통치 않을 경우 비장의 카드로 쓰기 위해 담보제공 사실을 감춰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4일 오전 여느 때와 같이 6시40분께 출근한 정몽헌 회장은 다시 집무실 문을 닫았다. 정회장의 비서는 "정회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면서 언론의 관심을 따돌리려고했다.

정회장은 이날 새벽 청운동 정주영 명예회장을 찾아가 발표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박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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