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V 성담론, 그 아슬아슬한 선

중앙일보

입력

차안에 똑같은 방향제를 두고도 어떤 이는 "냄새난다" 고 이마를 찌푸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향기롭다" 고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는 두 개의 그룹이 있다.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머리를 보며 "젊음이 좋다. 자유가 좋다" 라고 느끼는 건 A그룹이다.

"서양사람 되고 싶어 환장했군" 하며 적대감을 보이는 B그룹도 있다.

취향은 강요할 게 아니라지만 노랑머리는 B그룹에게 마음이 편치 않은 대상임에 분명하다.

다만 조금씩 노랑머리의 숫자가 늘면서 "세상이 바뀌어 가는군. 그게 좋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 하며 그들은 분노의 수위를 누그러뜨린다.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다.

성담론이 TV에서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출렁임을 지나 요동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정보프로그램인 '21세기 위원회' 에서는 "출연자 중 누가 자위행위로 고민했을까" "콘돔광고에 어울릴 것 같은 여성연예인은 누굴까" 등을 소재로 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법의 성' 이라는 프로그램이 용감한 처녀 비뇨기과의사를 앞세우고 돌진하다가 주저앉는가 싶더니 월요일밤 비슷한 시간에 방송되는 '이홍렬쇼' 와 성인시트콤 '세 친구' 는 지금 성을 소재로 누가 더 진하고 대담한지 한판 내기라도 벌이는 형국이다.

30대 유부남의 '대담한' 이야기라고 부제를 단 '아름다운 성' 이 우여곡절 끝에 전파를 탔다.

솔직히 TV에서 하니까 대담한 이야기지 친구들 사이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일단 나는 그 방송하기까지의 '우여곡절' 에 주목한다.

방송사 내부심의는 물론 기자단과 여성단체 모니터의 사전시사(심사에 가까운)를 거쳤다고 한다.

첫회 방송은 예정된 시간에 못 나갔다.

담당PD는 "성담론을 공개적으로 끌어낼 때가 되었다" 고 주장한 반면 심의팀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고 판단한 것이다.

그 '때' 란 도대체 언제일까. 정답은 없다.

기획의도에는 '보통어른들의 솔직한 자기고백을 통해 부부가 자연스럽게 말문을 트는 것' 이라고 나와 있다.

B그룹은 '솔직하다면 TV에서 뭐든지 해도 되나. 부부 횟수까지 공개해서 뭘 얻자는 것인가' 라고 물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중적 노파심을 버리라고 몰아칠 이유는 없다.

"자기는 은밀히 즐기면서 애들은 가라고 야단치는 게 옳은 일인가" 라고 따지지 말 일이다.

그 밑바닥에도 느린 행보의 사랑은 있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 사람도 있고 못마땅한 사람도 있다.

이야기하는 방식에 따라 민망할 수도, 공감할 수도 있다(성에 관한 한 무용담은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다).

TV가 최대공약수를 찾는 매체임은 분명하지만 0.5회와 15회를 드러낸 당사자의 아내들도 과연 그 공개적인 고백에 동의했는지 그것이 조금 궁금하다.

은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성' 을 들춰내 오히려 덜 아름답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싹 씻어내긴 어렵다.

나는 A그룹인가, B그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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