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북한에 전자공단 건립 계획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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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북경협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비교적 차분한 태도를 보였던 삼성이 수원전자단지의 규모에 버금가는 전자공단을 북한에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3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돼온 북한 내 전자단지 조성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재계는 최근 건강을 회복한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이 업무 일선에 복귀하면서 삼성의 대북 사업을 바짝 챙기는 것으로 관측했다. 李회장은 지난 2일 7시간 동안 전자.섬유 관계사 경영진과 잇따라 마라톤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삼성은 1992년 북한에 의류 임가공 공장을 세워 대북 사업에 뛰어든 뒤 평양 대동강 TV공장에서 제품 생산에 들어갔고 최근에는 남북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센터를 평양과 중국 베이징(北京)에 설립해 이 분야에 대한 시장 선점에 나섰다. 삼성은 또 현대의 금강산 개발사업에 대응해 백두산.묘향산 개발사업 구상을 북한측에 제시해놓은 상태다.

삼성은 북한 지역에서 삼성 붐을 일으키기 위한 작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학수 본부장은 "이달 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북한 방문단을 파견하려다 다음달 중순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미뤘다" 고 말했다.

삼성은 평양체육관에 전광판을 기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현지에서 전자제품 전시회와 남북한 탁구선수들간 친선경기를 열어 삼성 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 전광판은 삼성본관 내 삼성플라자에 설치했던 것이다.

삼성은 또 평양 시내 유명 호텔 두곳에 대형 삼성TV를 설치해 삼성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자 공업단지 조성을 비롯한 대북 사업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삼성은 전자단지 입지로 평남 남포와 황해도 해주 등을 원하는 데 비해 북한은 그보다 위쪽 지역을 주장하는 등 부지 선정에서 의견이 다르다.

북한은 또 공단 조성의 공기를 삼성측이 제시한 10년의 절반인 5년으로 단축하고, 투자 금액은 삼성이 계획한 것의 두배가 넘는 10억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학수 본부장은 삼성의 투자규모에 대해 "삼성은 10년 동안 5억달러를 투자할 생각이지만, 북한이 5년 안에 10억달러를 요청해왔다" 며 "사업이 성사되려면 이런 이견이 좁혀져야 한다" 고 말해 앞으로 투자금액을 절충할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측은 또 물자 수송을 위해 북한이 꺼리는 판문점을 통한 육로 수송을 원하면서 전기와 용수 등 부족한 인프라를 걸림돌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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