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씨, 당신 얼굴만 떠올려도 행복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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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11111에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11년 1월 11일 이지요. 30년 지기 직장동료이신 양가 아버지의 소개로 처음 만난 추운 겨울날.

천안의 어느 찻집에서 하얀 털옷을 입은 혜민씨는 새치름한 얼굴로 앉아있었지요.

어색한 첫 인사와 한참의 침묵이 흘렀고, 어렵게 말문을 열은 나의 첫 질문은 역시나(?) 취미였습니다. “취미가 뭐에요?” 한참을 생각하던 혜민씨는 “동 … 물이요” “네? 동물이요?” 긴장한 나머지 황당한 대답을 하고 얼굴을 붉히는 당신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박장대소를 하고, 우리는 이렇게 첫만남의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심상치 않은 취미(?)를 가진 동물애호가인 혜민씨는 집에 있는 13살 된 강아지 ‘뚱이’ 할아버지(?) 돌보기를 떠올렸나 봅니다.

첫 만남 이후 어떤 때는 철부지 어린애 같고 가끔은 야무진 누나 같은 당신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지요. 지금 우리 둘은 한 평생, 아니 죽어서도 같이하자는 종신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혜민씨, 요즘 나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나 지칠 때면, 당신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곤 한답니다. 단지 그것뿐인데 많은 위로와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이 되지요. 이런 것이 사랑이고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이란 걸 하나봅니다. 이름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잠깐 멍하게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과 남은 평생의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에 들떠 하루 하루가 즐겁습니다.

아마도 우리 결혼 후에는 지금처럼 즐겁지 않을 수도 있어요. 차가운 현실에 놀라기도 하고, 힘든 일, 슬픈 일, 서로가 미운 일도 많이 있겠지만, 그런 것을 둘이 같이 지지고 볶고 하면서 풀어나가는 것. 기대되지 않아요?

내가 당신에게 약속할 수 있는 건, 난 당신이 할머니 되어도, 늘 옆에서 같이 걸을 거란 거에요. 지금처럼 꼬집혀가며 아프다고 투덜거려가면서도, 늘 곁을 지키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혜민씨.

우리 결혼해요
신랑 : 원종영(35) / 신부 : 나혜민(30)
신랑부모 : 부 원중호, 모 차주희 / 신부부모 : 부 나종성, 모 김연숙
일시 : 2011년 9월 18일(일) 오후 3시 / 장소 : 연세대학교 동문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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