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 부실해소방안으로 사재출연 적정선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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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투신증권의 부실 해소방안으로 정주영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의 사재출연이 거론되는 가운데 현대그룹이 고심하고 있다.

현대는 내부적으로 여론과 정부의 압박 수위에 따라 선택할 몇가지 안을 검토 중이지만, 겉으론 "사재출연은 없다" 고 되풀이하면서 지난주말과 1일 잇따라 금융감독위 관계자들을 만나 의사를 타진했다.

현대는 총수 일가의 사재 출자.출연을 배제한 채 계열사 추가 증자 등을 포함한 현대투신증권 정상화 방안을 1일 정부측에 제시했으나, 정부는 보다 강도 높은 방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2일 중 발표할 예정이었던 현대그룹의 추가적인 자구노력 방안이 3~4일로 연기될 전망이다.

현대의 가장 큰 고민은 鄭명예회장에게 사재출연을 건의할 사람과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현대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을 비롯한 그 누구도 鄭명예회장에게 '사재출연' 을 건의하기는 힘들다" 고 말했다.

지난 3월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의 주총 때 鄭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안을 구조조정본부에서 마련했지만 鄭명예회장에게 이를 보고하지 못해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창업자에게 손을 떼라는 것은 '현대맨들이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불경에 속한다' 는 게 이유다. 사재출연도 마찬가지라는 게 현대 관계자의 솔직한 이야기다.

현대가 총수 일가의 사재출연을 제외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추가대책이란 ▶계열사의 추가증자▶후순위채권 추가발행▶외자유치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증자나 채권발행은 지난달 26일같이 그룹내 다른 계열사의 주가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외자유치도 외국 금융기관들이 현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어렵다. 더구나 정부가 이 두가지 방안에 대해선 현대가 표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 로 보지 않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사재를 출연하려 해도 오너 일가의 알려진 재산이 많지 않아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오너 일가의 장확한 사재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3월 15일 기준으로 주식보유 상황을 보면 鄭명예회장은 상장 계열사의 주식 2천4백78만주(2천7백19억원)를, 정몽헌 회장은 3천2백85만주(2천6백67억원)를 각각 갖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상장 계열사 보유주식은 2천1백85만주(1천3백53억원)이다.

주식 이외에 鄭명예회장의 경우 서울 가회동과 청운동 자택을 제외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진 재산이 없다.

현대 관계자는 "鄭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사재규모로 볼 때 단기차입금이 3조2천8백억원인 현대투신증권의 부실을 책임지기는 힘들다" 며 "삼성자동차에 사재를 출연한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이라는 '돈 되는'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었던 것과 다르다" 고 말했다.

현대 계열 비상장사는 현대생명과 현대아산 정도인데, 이 회사들은 계열사가 출자한 형태이며 오너 일가는 거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서산농장도 현대건설 소유로 돼있어 사재출연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현대측 설명이다.

현대는 정부의 도움 없이는 현대투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재출연을 제외한 자구노력 방안이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탐탁지 않은 반응을 얻자 추가적인 자구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현대그룹은 국세청의 주식이동 조사와 공정거래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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