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 객석 시위에도 주빈 메타 지휘봉은 멈추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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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주빈 메타

1일 런던에서 열린 이스라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일부 관객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고 있다.

1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로열 알버트홀. 주빈 메타가 지휘봉을 든 지 5분쯤 지났을 때다.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무대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객석 2층에서 10여 명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들은 베토벤 마지막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를 큰 소리로 함께 불렀다.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는 여기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위대는 손에 피켓을 나눠 들고 있었다. 한 사람씩 들고 있는 알파벳을 연결하면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을 해방시켜라)’이란 구호가 완성됐다. 황급히 달려온 경비원들이 이들을 모두 끌어냈을 때, 첫 곡인 베베른의 파사칼리아가 끝났다.

 이날은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무대였다. 8주 동안 런던에서 열리는 음악제인 ‘BBC 프롬스’의 올해 62번째 공연이었다. 1895년 시작된 이 축제는 영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최대 음악제 중 하나다. 공연을 생중계하던 BBC 라디오 3는 황급히 방송을 중단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는 게릴라 시위가 총 다섯 차례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연주곡인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시작하기도 전에 방해를 받았다. 청중 두 명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펄럭이며 “팔레스타인을 해방시켜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휴식시간 후인 2부에서도 시위가 세 번 더 있었다. 대다수의 청중은 “저들을 내쫓아라!” “조용히 하라”고 큰 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8000여 석 이상의 거대한 객석 곳곳에 숨어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튀어나오는 이들을 막기는 불가능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침착했다. 메타는 객석을 한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시위와 관계없이 공연을 계속했다. 협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도 지휘자의 지시만 따르며 연주에 집중했다.

 하지만 영국 청중은 분노했다. 영국 문화부 장관인 에드 바이지는 공연을 본 후 “오늘 시위가 모든 청중을 이스라엘 지지자로 돌려놨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음악 칼럼니스트인 데보라 오어는 “나는 팔레스타인 지지자였다. 하지만 콘서트를 방해하며 이기적인 분쟁을 일으킨 이들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일갈했다.

 BBC 라디오 3는 “1927년 프롬스 중계를 시작한 이후 방송 중단 사태는 처음이다. 잇단 시위로 청취가 원활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 내린 조치”라 공식 해명했다. BBC에 따르면 이날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주빈 메타는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인도인이며 77년부터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던=글·사진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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