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씨 ‘등록금 굴레’ 풀어준 7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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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충주시 K씨 자택에서 K씨 부인이 1000만원이 든 봉투와 차동엽 신부의 책 『무지개원리』를 이지호씨에게 전달하고 있다. K씨 부인이 사진 촬영을 원치 않아 두 손(왼쪽)만 나왔다. [충주=정원엽 기자]

본지 8월 12일자 19면.

지난 23일 오후 충북 충주시 외곽의 한 전원주택. 대기업 임원을 지낸 뒤 개인사업을 하다 6년 전 은퇴해 이곳에 정착한 K씨(70) 부부가 대문 밖까지 나와 서울에서 온 손님을 맞았다. 손님은 본지 8월 12일자 19면 ‘한 달 이자 90만원 … 24세 대학생의 고금리 분투기’ 기사에 소개된 이지호(24)씨. 대학 등록금, 어머니 병원비 등에 허덕이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열 달 만에 빚이 1300만원까지 불어났다.

 K씨 부부는 이날 이씨에게 1000만원을 전달했다. K씨는 이씨에게 “나도 금융기관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은 없는 사람한테는 무서운 곳이야. 이 돈은 가족과 상의해 현명하게 관리해라. 항상 어려운 일을 상정해 두고 미리 준비하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K씨 부인(68)은 당시 기사를 읽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신문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읽으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망설이다 보면 넘어가기 일쑤죠. 그런데 지호씨 기사는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기사를 스크랩해두고 읽고 또 읽었어요. 사흘쯤 고민하다 남편한테 도와주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더라고요.” K씨 부인은 “책을 같이 선물하면 힘이 될 것 같다”며 차동엽 신부의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를 함께 건넸다.

 이씨는 “부족한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간 12일이 등록금 마감일이었어요.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울었죠. 며칠 뒤 중앙일보를 통해 K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어요. 처음엔 빚을 다 갚아 주시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빚은 제 실수고 제 책임이에요. 제 등록금 180만원, 동생 등록금 400만원, 어머니 밀린 병원비 200만원…. 염치 불고하고 이것들만 좀 도와달라고 말씀드렸죠. 용기와 희망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이씨)

 K씨 부부는 기부 사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익명으로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누구든 손을 내밀어 수렁에서만 일단 벗어나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저희도 결혼할 때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지호씨도 용기를 내길 바라요.”(K씨 부인)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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