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먹고 있는 모든 약의 이력서, 약물카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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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H씨는 몇 달 전부터 얼굴에 생긴 피부질환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동안 병원을 네 곳이나 옮겨 다녔다. 항생제 서너 가지, 바이러스 치료제 두 가지, 스테로이드제 두 가지 외에도 소화제·항히스타민약 등을 처방 받아 시간에 맞춰 복용했다. 그러나 병은 호전되지 않고 속쓰림·소화불량 등 약의 부작용만 경험했다. 그는 요즘 처방된 약 이름과 용량을 기억할 만큼 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의사를 만나면 “○○○(약 이름)을 복용했는데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의사는 그의 말을 참고해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H씨처럼 자신이 먹는 약 이름과 복용량을 꿰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가 항생제 내성률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사람마다, 질병마다 잘 듣는 항생제가 따로 있다. 호르몬제의 일종인 스테로이드제는 장기 사용하면 얼굴이 붓거나 위장장애를 유발한다. 따라서 미생물·염증에 의한 질병을 치료할 때는 항생제를 잘 가려 사용하고, 스테로이드제 등을 적절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일(처방)은 의사 몫이지만 의사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환자다.

 기자는 모든 환자에게 자신이 복용 중인 약의 리스트(약물 카드)를 작성할 것을 추천한다. 이 리스트는 본인의 질병 퇴치를 돕는 ‘희망의 카드’다. 약물 카드엔 해당 질병에 걸린 뒤 처음 복용한 약부터 일련번호를 매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 일련번호별로 ①약 이름 ②1회 복용량 ③하루 복용 횟수 ④복용 시기(식후 30분 등) ⑤처음 복용하기 시작한 날 ⑥병원과 담당 의사명 ⑥부작용과 효과(알레르기 등)을 적어두면 일목요연하다.

 처방받은 약(전문약) 외에 일반약(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하는 약)·수퍼 판매약·영양제·비타민제·허브·건강기능식품·유사건강식품 등을 먹고 있다면 이를 약물 카드에 함께 기록한다. 이들은 처방약과 반응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의사가 처방할 때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된다.

 현재 병·의원이나 약국을 방문한 환자의 금기·중복 약물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DUR 제도를 통해서다. 의사나 약사가 처방·조제 내역을 PC에 입력하면 심사평가원 중앙 서버에 누적된 환자의 조제 기록을 통해 금기·중복약물이 바로 통보되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 등과 전문약을 함께 먹을 경우 이 같은 점검이 안 된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낮추는 약과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복용 중이라면 의사는 둘 중 하나를 제외시킬 것이다. 만일 의사가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으면 “(처방 받은) 약과 건강기능식품 등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지” 대놓고 물어보는 것이 현명하다.

 약물 카드는 실제 신용카드 크기로 만들어 코팅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병원을 방문할 때 지갑에서 약물 카드를 꺼내 의사에게 보여주자. 그러면 의사는 환자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 처방전을 쓸 때도 더 많이 생각하고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된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에게 약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줄 시간이 없다. 대개는 환자가 직접 물어보는 약에 대해서만 설명해준다. 진료실을 나가기 전 의사에게 “이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것도 환자에게 큰 득이다.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면 환자의 질병을 다루는 의사 자신의 전략을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약사를 활용하자. 요즘 대한약사회가 나서서 약국의 복약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때 단골 약국이 있는 것이 정확한 약 정보를 얻는 데 유용하다. 다수 약국의 PC 안엔 환자의 ‘약물 카드’가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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