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열린 광장

분노 조절책 연구할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분노의 공화국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비하하는 정치인들의 막말, 이어지는 집회와 시위, 범람하는 악성 댓글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그 증거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노의 에너지로 넘치는 것은 그만큼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많다는 표시다. 분노는 가정폭력의 배후에도 있다. 김솔비양의 이야기가 그렇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는 집안에 불을 질렀고, 그 불로 KAIST에 다니던 아들, 부인, 그리고 자신마저 죽이고 말았다. 졸지에 가족을 다 잃고 화상마저 입은 솔비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개개인의 분노가 집단화돼 생기는 정치적인 분노는 때때로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행정도시 이전의 백지화에 반발한 충청도민의 분노가 그렇다.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음에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그들의 분노는 여전했다. 정부와 여당은 집단의 분노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원안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분노는 세계사도 움직인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를 이용해 10월혁명을 성공시켰고, 마오쩌둥은 농민들의 분노를 부추겨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분노 바이러스는 정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가정에까지 침투한다. 그래서 집단 시위, 가정폭력, 자살의 급증은 서로 깊이 얽혀 있다.

 이제 우리는 분노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조절책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할 때다. 구조조정을 놓고는 해당 회사에, 독도를 두고는 일본 정치에 대해 한껏 분노하라. 그러나 계산은 철저하고 냉정해야 한다. 나라의 생존도 분노의 조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