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쁜 투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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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둘러싼 갈등이 각종 정당·단체 간 비방과 고발로 혼탁해지고 있다. 정작 논란의 핵심인 무상급식 방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온데간데없다. 정책을 선택하는 주민투표인데도 정책은 사라지고, ‘투표 참여냐 불참이냐’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문제가 복잡해진 것은 24일 치러질 투표가 일반 선거가 아니라 주민투표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를 뽑는 선거의 경우 투표율에 관계 없이 최다득표자가 당선되지만 주민투표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지 않을 경우 무효가 된다. 그래서 주민투표를 주도한 오세훈 시장에 반대하는 야권은 이번 투표를 무효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번 투표를 ‘나쁜 투표’로 규정하면서 불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의사표현 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누구도 투표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불참운동 바람에 무상급식이란 정책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투표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언제 어디서 무슨 투표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유권자가 많다. 투표가 무효가 될 경우 182억원의 예산을 들여 주민투표를 하고서도 정작 중요한 유권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투표를 홍보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피케팅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오 시장이 들고 다닌 피켓엔 ‘8월 24일은 주민투표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투표일을 알리는 단순한 홍보행위로 허용되어야 한다. 반대로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듯한 서울시 교육청의 e-메일에 대한 선관위의 대응은 너무 미적지근하다.

 선관위는 투표를 독려해 유권자의 의사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는 업무를 책임지는 기관이다. 선관위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투표 날짜와 투표 대상인 정책내용을 알려야 한다. 이번 투표는 무상복지 논란의 가닥을 잡는 중요한 기회다. 유권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는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다.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