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디스트리뷰터즈 컷, 날렵한 그리고 경제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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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난 날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인생'을 가르쳐준 청소년기의 진정한 교실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동네 어딘가에는 있었던 재개봉관 말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내게 그 재개봉관들이란 그리 마음이 끌리는 곳이 아니었다. 스크린 위에 줄곧 내리는 폭우와 코 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도 그렇거니와 사방에 깔려 있는 왠지 모를 '불량한' 공기는 일종의 척력(斥力)을 행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재개봉관에서 영화 보길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그 곳에선 '다른 버전'의 영화가 상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씨어터즈 컷'(theater's cut)이라고나 할까? 이곳 저곳에서 돌연히 잘려나간 구멍들이 있는 그것은 관객에게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했다. 이게 싼 입장료로 두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치르는 당연한 대가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극장을 찾는 건 나의 상상력의 범위를 시험받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개봉관이라고 해서 원판 보존의 안전 지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예전이라고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므로) 확인하게 되었다. 며칠 전 하루에 두 편의 영화를 보던 그 날은 그야말로 짜증나는 날이었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과 스파이크 리의 <썸머 오브 샘>가 그 날 본 영화였는데, <감각의 제국>이야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꽤 많은 분량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이미 수 차례 들었던 차인지라 그것의 '버전 변환'에 대해선 놀라지 않을 준비 태세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썸머 오브 샘>의 경우에 그것은 백주에 느닷없이 일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툭툭 튀는 점프 컷이 난무하고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어떤 시퀀스는 아예 그 자체가 없어져 버렸는데 이걸 '테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이 두 편의 영화를 본 날은 또 한 편의 영화가 '한국판'으로 개봉된 날이기도 했다. 즉 일본 영화 <엑기>가 무려 30여분이나 잘려진 채 개봉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날은 외국 영화의 한국판 상영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한꺼번에 전시해준 아주 흥미로운 하루였다. 어떤 영화는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서, 또 어떤 영화는 한 번이라도 더 상영함으로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해주어야겠다는 수입사(또는 극장)의 세심한 배려(!)에 의해서, 그리고 또 어떤 영화는 일본 영화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기에(주지하다시피 70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지 못한 일본 영화는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아야만 국내 개봉할 수 있다) '날렵한' 몸매를 갖춘 한국판 영화로 변신해야 했던 것이다. 이야말로 한국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흥미로운 사회학적 보고서가 아니고 또 무어란 말인가?

"그래, 이런 저런 이유로 바쁜 한국 사람들은 다이제스트 버전만 보면 되지 뭐"라고 빈정거리고 그만두려다가도 또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이따위로 멋대로 편집된 영화들(이른바 디스트리뷰터즈 컷distributor's cut)을 왜 봐야 하는 거지? 주저리 주저리 길게 이야기하자니 어차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내 화만 돋구게 되고, 그렇다고 아무 말 안하고 인고의 미덕을 발휘하자니 울화가 치민다. 그러니 한 마디만 하고자 한다. 굳이 표현의 자유 어쩌고 떠들 필요도 없다. 창작자의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에 대한 예의를 들먹여 봤자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한국판 영화를 만든 분들은 영화에 대해 문화로서보다는 산업, 또는 사업으로서만 생각할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 사업자 분들은 왜 관객, 즉 손님에 대한 예의는 눈꼽만큼도 생각지 않는 거지? 작지만 중요한 부품이 군데군데 빠져 있는 제품을 파는 건 불량 제품을 파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완제품을 팔 수 없으면 아예 사오지 말고 팔지도 말아야 되는 것 아닌가? 이건 공정 거래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다른 상념이 떠올랐다. 영화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싶어하더라는. 그렇다면 한국판 외화를 만드신 분들은 아무래도 직접 영화 제작에 가담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오래 전에 푸도프킨이 말했고 그건 수많은 영화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가. "편집은 영화 예술의 기초"라고. 그렇게 영화 제작에 뛰어들고 싶었을까?

(P.S: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서 언급한 불쾌한 영화 경험은 내게도 불찰이 있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모 영화 잡지에는 앞에서 예를 든 세 편의 영화가 한국판으로 보여진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실려 있었다. 개봉 영화에 대해 꼭 체크해야할 또 하나의 필수 '정보'를 나는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홍성남씨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중앙대 영화학과(석사과정)졸업, 현재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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