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산가족 추석 상봉, 우리가 먼저 제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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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추석을 전후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어제 “올해 추석을 계기로 상봉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추진하는 것은 없다”며 “현재 남북관계 상황이 우리가 먼저 북측에 상봉을 제의할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어제 오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올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도록 남북 당국 간 협력을 촉구한다”고 밝힌 데 대한 통일부 측 반응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할 상황은 아니지만 북한이 제의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통일부 입장이라고 한다. 능동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지만 북한이 지난해처럼 먼저 제안해 오면 따라가기는 하겠다는 것이다. 그때까진 손 놓고 있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핑계로 최소한의 인도적 책무조차 방기(放棄)하고 있으니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정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돼 있는 상봉 신청자 수는 지난달 말 현재 12만8585명이다. 그중 37.2%인 4만7907명이 이미 사망했다. 생존해 있는 8만678명 중에서도 80세 이상 고령자가 43.6%에 달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분들이다. 헤어진 혈육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남북관계 분위기 운운하며 외면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재미동포를 대상으로 북·미 이산가족 상봉마저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손 놓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수해를 입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었던 지난해에도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북한이 바라는 ‘통 큰 지원’에는 못 미치지만 올해도 대북 수해 지원이 예정돼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와 무관한 인도주의 문제다. 남북관계와 분리해 별개로 다룰 사안이지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주고받기식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제안할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다. 우리가 먼저 적극 제안해야 한다. 다음 달 12일이면 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