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 절반도 안 찼는데 또 비우라니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정화조 청소를 또 하라고?”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4층짜리 빌딩을 갖고 있는 송모(46)씨는 최근 구청에서 “정화조를 비우라”는 연락을 받고 짜증이 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 분뇨처리차량을 불러 정화조를 싹 비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10개월 전엔 3층에 있던 이비인후과가 방을 뺀 뒤 아직 세입자도 들지 않았다.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이 줄었으니 용변량도 줄었다는 게 송씨의 설명이다. 구청에 문의했더니 청소행정과 직원은 “무조건 1년에 한 번씩 청소해야 한다”고 했다. 송씨는 “정화조가 비어있는데도 굳이 청소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건 낭비”라고 말했다. 낭비여도 어쩔 수 없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하수도법 시행규칙은 ‘연 1회 이상’ 정화조를 청소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정화조 청소수수료는 0.75㎥당 2만2448원(서울 평균)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서 0.15㎥가 초과할 때마다 1590원이 더 붙는다. 집에 사는 사람이 줄어 0.75㎥를 못 채우더라도 기본요금은 내야 한단 얘기다.

 하지만 서울 땅 밑에 깔린 정화조를 채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16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내놓은 ‘분뇨정화조 운용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정화조는 4012만여 명의 배설을 감당하도록 설치돼 있다. 그러나 2010년 현재 실제 이용인구는 61% 수준인 2464만여 명에 불과하다. 거의 절반 가까운 공간이 텅 비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1년마다 정화조를 청소해야 하니 시민들의 부담도 적잖다. 정화조는 고형물인 슬러지(찌꺼기)와 오수로 차있다. 청소수수료도 이 둘을 합친 양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오수는 어차피 하수관을 타고 흘러간다. 반드시 치워야 할 것은 슬러지다. 보고서는 주거시설의 경우 2년에 한 번 청소를 하더라도 정화조가 슬러지 양을 감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간 55억원의 돈이 청소업자들에게 추가로 건네진다는 것이다. 다 차지도 않은 정화조를 계속 비우다 보니 역설적으로 분뇨처리시설은 항상 만원이다. 서울시에서 하루 동안 수거되는 분뇨는 1만602㎥. 이는 중랑·서남·난지물재생센터 등 3곳의 분뇨처리시설의 1일 처리용량(1만500㎥)보다 약 100t 더 많은 양이다. 처리용량을 초과해도 겨우 소화는 되지만, 연간 26억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결국 해법은 청소시기를 ‘1년 1회 이상’으로 못박은 하수도법 시행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정화조를 사용하는 사람이 몇 명인가에 따라 청소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원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