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대 금품·향응 … 한전 감독관들 ‘뇌물 파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한국전력공사 직원 김모(49)씨는 2007년 8월 자신이 감독관으로 있는 서울 종로·중구 일대 전기공사 현장에서 공사를 수주한 업체에 “내가 알고 있는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상당수 업체가 공사를 수주한 뒤 하도급을 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기공사는 입찰을 받은 전기 전문건설업자가 직접 시공하거나 부분 하도급만 주게 돼있다. 업체는 김씨가 말한 하청업체에 불법으로 하도급을 줬고, 공사비의 30%를 챙겼다. 하청업체는 그 대가로 김씨에게 8000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이 같은 방법으로 32차례에 걸쳐 2억2500만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한전 감독관 노모(53)씨는 부인 명의로 서울 강남에 주류 백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업체 관계자들을 자신의 가게로 불러 양주를 시가보다 10배가량 비싸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1억원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 또 감독관 남모(52)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유흥주점 여사장의 돈을 시공사에 빌려준 뒤 연 60%의 선이자를 받게 했다. 해당 주점에서 상습적으로 접대를 받아 매상을 올려주기도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불법 하도급을 묵인하거나 공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 또는 향응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한전 공사감독관 등 70여 명을 적발해 이 중 뇌물 액수가 많은 김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 공여)로 하청업체 대표 문모(44)씨를 구속하고 공사 관계자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 70여 명이 받은 뇌물이 모두 15억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특정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낮은 가격에 하도급이 이뤄지다 보니 부실공사의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감독관들이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사원번호 등을 알려주고 작업 지시서를 대신 작성하게 하는 등 근무태만 행위도 적발됐다.

한전은 “기소되는 직원에 대해선 직위해제 등 강력한 인사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