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고금리에 … 부모·자식간 서로 미안한 5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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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경제부문 기자

지난 5일 기자에게 두 통의 e-메일이 왔다. 대부업체를 이용한 대학생 수가 5만 명에 달한다는 기사를 읽고 독자들이 보낸 것이다. 한 명은 50대 남성, 또 한 명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청년이었다. 두 메일을 읽어보니 묘하게도 닮았다.

 50대 남성은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중소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10년 전 퇴직했다. 등록금을 댈 능력이 안 돼 대학생 아들이 ‘빚쟁이’가 되는 모습을 마음 아프게 지켜봤다고 했다. 얼마 전 아들이 인터넷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못난 아버지’라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20대 청년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올 2월 어렵게 지방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매달 상환해야 하는 70만원의 학자금 대출 원리금이 부담스럽자 대부업체에 손을 벌렸다. 보증은 아버지가 섰다. 돈을 못 갚자 이번엔 아버지가 ‘빚쟁이’로 몰렸다. 청년의 편지엔 ‘못난 자식’을 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짙게 묻어났다.

 이 아버지와 아들은 둘 다 “못난 제 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미안해할 전국의 아버지와 자식이 5만 명 가까이 된다. 대부업체뿐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금을 대출로 해결한 대학생이 전체의 19%나 된다고 한다. “못난 제 탓”까지는 아니어도 늘 미안함을 안고 사는 부모·자식이 70만 명에 달하는 셈이다. 못나고 미안한 사람들만 늘어나는 사회다.

 물론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대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학자금이라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 4.9%의 저금리 대출을 이용하면 된다. 일부 대학생이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게 ‘먹고 노는’ 것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학생에게도 최소한의 생활비는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생활비 대출은 한 학기 최대 100만원, 연 200만원 한도의 대출이 전부다. 학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생활비 대출까지 고려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들이 고금리 늪에 빠져 허덕이도록 놔둘 건가. 더는 못나고 미안한 부모와 자식이 가득한 ‘슬픈 사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김혜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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