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방약 중복 복용 안전성 9월부터 개인별 점검 가능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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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으로 대한민국 건강 길잡이를 자처하는 기관이 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불필요한 진료는 없는지, 의약품이 과다하게 처방되지 않는지를 심사·평가해 ‘똑똑한 의료소비’를 돕는다. 객관적인 병원평가정보를 바탕으로 좋은 진료기관을 소개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장인 강윤구(61) 원장은 “심사평가원은 발전하는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강 원장은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알리고 칭찬해 더 잘하도록 응원한다. 부당 지출되는 진료비 청구를 막기도 한다. 건강보험 재정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의 권익보호는 덤이다. 의료계에서는 그를 ‘경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원 입장에서 껄끄러운 부분이나 잘못된 점을 잡아내 감시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강 원장이 사용하는 무기는 ‘소통’이다. 심사평가원에도 섬세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소통이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발전시키나.

 “인구 고령화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심사청구 건수도 함께 증가했다. 2009년 기준으로 심사평가원에서 심사한 진료비 청구 건수는 약 13억 건이다. 서류 하나하나를 심사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평가시스템을 선진화해 전산 심사를 도입했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더 많이 심사한다고 의료서비스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서로 입장을 알고 공감대가 형성돼야 효율적인 심사가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재정 낭비가 줄어든다. 발전된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리는 것은 국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업무 대부분이 의료서비스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대국민 인지도는 29%대로 낮다. 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관리공단처럼 잘 알려진 기관과 달리 뭘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은 병원과 약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면 낫는 감기도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진료와 약 복용은 환자 자신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준다. 이를 조정하는 것이 평가원의 일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피부로 체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국민은 약을 많이 먹는 편인가.

 “한 번 병원에 가면 평균 4개의 약을 처방받는다. 미국이나 스위스·호주 등 선진국이 2개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정도 많다. 처방되는 약 개수가 많아지면 약물 이상반응과 상호작용으로 문제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약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의약품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Drug Utilization Review)를 시행하고 있다. 잘못된 약물 복용을 막기 위해 의사가 처방하는 단계에서부터 점검한다. 오는 9월부터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약까지 확대 적용한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모두 DUR로 관리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강윤구 원장은 “약도 궁합이 있다”고 강조한다. 같이 먹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 약국에서 흔히 구입해 복용하는 해열진통제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에 사용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같이 먹으면 위장장애나 위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고생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이들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안전성 속보를 냈었다. 그는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약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내가 먹는 약을 점검 받으려면 어떻게 하나.

 “사실 환자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DUR시스템에 따라 약을 처방한다. 안전한 약 복용을 관리해줘 환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사평가원으로 직접 칭찬하는 전화도 왔었다. 약은 약국을 통해 유통된다. 조만간 약국에서도 일반약을 살 때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약과 약효가 충돌하지 않나 점검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인데 유출될 우려는 없나.

 “DUR 전산시스템은 은행처럼 전자 서명된 공인인증 절차를 거친 뒤 정보조회와 전송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의 보안적합성 검증을 거친 암호 알고리즘 방식을 적용해 서버 접속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보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관련 정보도 팝업 형식으로 제공돼 개인정보를 검색한다든가 조회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권선미 기자


의약품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Drug Utilization Review)=함께 먹으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 안전성 정보를 전산으로 실시간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점검하는 서비스다. 적절한 의약품 처방을 통해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강윤구 심사평가원장 독실한 불교신자다.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 시절에는 청와대 불자모임인 청불회장으로 전국 곳곳에 위치한 사찰을 방문, 청와대와 불교계 관계 개선에 기여한 숨은 인물이다. 그는 의료계와 심사평가원 간 교류를 중시하는 소통형 복지 전문가로 통한다. ‘두주불사’여서 가능한 일이다. 사람과 술이 좋아 밤새도록 말술을 마시기도 했다. 요즘에는 건강을 위해 막걸리 3~4잔으로 줄였다. 강 원장은 올해 초 안전한 약물복용 환경을 구축한 의약품 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을 실시하고 전산심사를 확대해 포브스 정도경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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