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구조조정본부 등 해체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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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지배구조 개선 등 재벌 체제의 강도높은 개혁을 촉구하는 정부와 여론에 직면, 구조조정본부 기구축소를 비롯한 조직개편 검토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4대 그룹중 현대는 지난 98년 3월 계열사 대표로 구성, 설립한 '현대 경영자협의회'와 `구조조정위원회'의 기구를 손질하기로 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단독회장' 체제를 승인한 자리였던 경영자협의회와 한시적 구조조정 전담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는 사실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자리잡고 있으나 현대는 기구 해체 또는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내주 발표할 그룹 운영 방침을 통해 양대 조직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사외 이사 등이 참석하는 투자 심의회를 계열사별로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삼성의 경우 그룹 차원의 공식적 의사결정기구로 구조조정위원회와 1주일마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사장단 회의가 있어 사실상 총수의 지배체제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특히 구조조정위원회는 재무.경영진단,인력. 기획홍보 등의 조직을 두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가 과거 종합기획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논란이 된다면 그룹 차원이 아니라 전자 등 주력 계열사에 조직을 구성, 업무 조정을 맡길수도 있다"고 말했다.

LG는 의사 결정 기구로 구조조정본부가 있고 업무에 있어서도 재무 및 사업조정,인사 등을 맡고 있다. 반도체 빅딜 이후 구조조정본부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축소해왔으며

현재 40여명의 인원으로 운용하고 있다. LG는 구조조정 업무가 마무리되면 언제든지 인력을 계열사로 재편, 해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K의 경우 '수펙스 추구 협의회'가 있으며 이는 계열사 대표 40여명이 참석하는 사장단 회의로 '화요회'라고도 불린다. SK는 협의회에 최태원 SK㈜ 회장과 손길승 SK텔레콤 회장이 직접 참석하지만 구조조정본부는 사업구조조정, 인력, 재무팀으로 구성돼 다른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와 비슷하다.

그러나 대부분 그룹이 '그룹 회장' 명칭은 그대로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관계자는 이날 '그룹 총수'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 '그룹 총수'제를 없애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재벌그룹들도 비슷한입장이다.

한편 이날 오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경제홍보협의회에 참석한 30대 그룹 임원들과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 등 재계 인사들은 재벌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실무 대책을 논의했다.

홍보협의회에 현대측 대표인 이영일 부사장은 불참했으나 참석 임원들은 총수들을 정점으로 한 구조조정본부와 사장단 회의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문제등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협의회에 참석한 한 임원은 "황제 경영으로 지칭되는 재벌의 지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정부와 여론에 대응, 조만간 재계 스스로 뚜렷한 방책을 마련해야 할시점에 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손 부회장은 특히 이날 오후 불우 이웃 돕기 자선단체인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행사 참석차 청와대를 방문, 정부의 의중 탐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청와대 행사는 이희호 여사의 초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나 손 부회장 등 재계 대표들이 재벌 체제 개혁 과제를 놓고 정부측과 상당히 깊은 수준의 논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업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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