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의 현대호'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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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후계구도가 정몽헌(鄭夢憲)회장쪽으로 구획돼 변화의 급류를 탈 전망이다. 현대는 1998년부터 정몽구(鄭夢九)회장이 국내부문을, 정몽헌 회장이 해외부문을 맡아온 '공동회장' 체제에서 이제 '단일회장' 구조로 바뀌게 됐다.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3.27 선언으로 창업주의 정통성을 정몽헌 회장이 잇는다는 의미까지 지니게 됐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집안의 전통은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회장을 통해서, 사업은 정몽헌 회장이 이어가라는 의미" 라고 강조했다.

鄭명예회장이 자신의 마지막 사업으로 추진 중인 대북사업의 승계를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정몽헌 회장을 선택했으리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앞으로 그룹의 경영과 인사를 총괄하게 된다.

그러나 鄭명예회장도 여전히 그룹 경영에 간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7일 "중요한 일은 다 저와 의논할 것이니까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 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최근 현대중공업의 주총에서 이사로 유임됐으며, 29일 현대건설 주총에서도 재선임될 전망이다.

정몽헌 회장은 이익치 회장 인사파동을 계기로 그룹의 핵심 분야가 금융이라고 서슴없이 손꼽았다. 형제간 이전투구의 재산 싸움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끝내 금융부문을 놓지 않았다. 그는 금융부문을 건설.전자 등에 앞서 그룹의 주력으로 키운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이익치 회장이 업계 7위였던 현대증권을 1위로 끌어올린 저력을 믿고 있다. 그룹은 현대증권뿐만 아니라 현대투자신탁증권.현대투자신탁운용.현대생명.현대선물.현대기술투자 등 6개 금융 계열사를 키우기 위해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금융부문을 키워야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는 2003년까지 계열분리를 끝내면서 금융부문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끌고갈 방침이었다. 그런데 이제 금융부문도 정몽헌 회장의 친정체제로 건설.전자와 함께 3각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또 입버릇처럼 말해온 21세기형 사업구조로 변신하기 위해 인터넷과 벤처사업 투자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鄭명예회장과 함께 따라다닌 중후장대형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정몽헌 회장은 다음주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21세기 경영구상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몽헌 회장은 곧 그룹에서 떨어져 나갈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정공.현대캐피코 등 4개 자동차 계열사를 제외하고,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까지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준 의원은 중공업의 대주주이며, 전문경영인은 정몽헌 회장으로 보아달라고 그룹측이 설명했다.

정몽헌 회장은 또 鄭명예회장의 대리인으로 지분정리 작업에도 주도권을 쥘 전망이다. 鄭명예회장은 주력 계열사 주식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 시가로 따져 4천억원대에 이른다. 정몽헌 회장이 鄭명예회장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것은 이들 지분을 대부분 상속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라는 현대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정몽헌 회장은 최대 지분을 보유하게 돼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 체제의 순항을 위해서는 난제가 쌓여 있다. 정몽구 회장 계열사와 완전 분리할 때까지 갈등의 불씨가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측은 금융부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오는 6월 자동차가 분리될 때 금융부문 가운데 현대생명 등 일부를 떼 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형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으리란 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룹측은 '그런 일은 없을 것' 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파문과 관련해 문책인사까지 이어진다면 파장은 다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또 鄭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제대로 교통정리되지 않으면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은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있다. 정몽헌 회장이 단일회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분승계를 추진하고 정몽구 회장이 일정 지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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