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의 승리인가?

중앙일보

입력

말많던 골드뱅크의 경영권 다툼이 공동대표제로 합의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당사자들은 누구도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이다.

이지오스 유신종 사장은 골드뱅크의 1대 주주로 부상한 릴츠펀드를 비롯, 주요 주주들의 지원과 비즈니스 모델 부재라는 현 골드뱅크의 문제점을 발판으로 경영권 인수에 나섰지만 결국 공동대표라는 골드뱅크측의 큰 그림에 갇히게 되었다. ‘아시아의 골드뱅크’로 발전시키겠다는 나름의 비전을 바탕으로 표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애초 주장과는 다르게 대기업의 벤처(?)에 대한 구애라는 루머만을 남긴채 김 진호 사장과 다시 손을 잡았다.

또한, 골드뱅크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보여준 파티와 같은 주주총회가 이제는 더 이상 주주들의 흥미를 얻지 못하며, 앞으로는 경제논리에 우선하는 싸늘한 비즈니스 생태계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뼈저린 각성을 얻게 되었다. 사실 김사장은 지난해 이미 매출 목표 500억을 자신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놓고 내기를 제의할 정도로 자신 있어 했지만 결국 지난해 매출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114억원에 그치고 이를 다시 2000년의 약속으로 미루어 놓은 상황이다.

골드뱅크 경영권 파문의 원인을 어느쪽이 제공했든, 이번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국내 인터넷의 대표기업으로 불리는 골드뱅크의 위상에는 크게 못 미쳤다. 더욱이 양측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민감한 각종 사안을 놓고 볼 때 경영권 다툼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어느쪽도 제대로 된 약속이행이나 신념이 부족 상황에서 이번 파문의 최대 피해자는 기자들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숱한 기자회견과 주총 전날까지 계속된 담화문과 신라호텔의 마지막 담판까지 줄곧 무성한 말 잔치에 시달린 것은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파문의 가장 큰 수확자는 단연 ‘골드뱅크 소액주주 연대모임’이다. 400여명으로 구성된 소액주주들이 당당히 자신의 의지를 피력해 ‘공동대표제’라는 합의점을 이끌어 냈으며, 무엇보다도 자그마한 덩치의 사이버 커뮤니티가 ‘고래싸움’의 중재자로서 떳떳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단지, 한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주가에 연연해서 만들어진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일을 계기로 사이버 커뮤니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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