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관’이 흙더미 속 아기 엄마 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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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 시간당 최고 110㎜의 폭우가 쏟아지던 27일 오전 9시25분. 서울 금천지구대에 신고 한 건이 접수됐다. 금천구 호암산이 산사태로 무너져 내리면서 토사가 산 아래 동네를 덮쳤고, 흙탕물에 세 살배기 아이와 어머니가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고한 주민은 "아이는 가까스로 구했지만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지구대 현장근무 요원들은 대부분 교통 통제를 위해 밖에 나가 있던 상황이었다. 지구대 행정업무를 보는 관리요원인 고현숙(36·사진) 경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기로 했다.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로서 다른 엄마의 위급한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산에서 밀려내려 온 흙이 마을을 휩쓸어 진입조차 쉽지 않았다. 119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흘러내린 토사로 구조대 역시 늦어지고 있었다. 함께 출동한 경찰관은 70대 노인을 구조하느라 바쁜 상황이었다.

 고 경장은 아이 어머니를 찾아나섰다. 한 주민이 “저쪽 건물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고 경장은 안전 장비도 없이 급류를 헤치고 건물로 접근했다.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라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 엄마인 음모(24·여)씨는 건물 구석에 허리를 다친 채 누워 있었다. 고 경장은 음씨를 부축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음씨의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고 경장은 “똑같은 상황이 와도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겠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경찰의 임무”라고 답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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