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담배논쟁] 업계 집중로비 의회 버틸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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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담배회사들은 미 식품의약국(FDA) 이 담배 판매를 규제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한 가닥 서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판기 판매 금지와 판매시 신분증 확인 등의 규제조치가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은 또 이 문제가 정부에서 의회로 넘어간 것을 환영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단지 FDA가 직권으로 담배를 '중독성 마약' 으로 규정하고 판매 등을 제한하는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일 뿐 담배에 대한 규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며 의회에 공을 넘겼다.

하지만 의회가 과연 얼마나 담배회사들의 막강한 로비를 이겨내고 규제안을 의결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우선 올해 안에는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의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말 상원의원 선거가 있어 다음 연도로 이 문제를 넘겨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다. 타임스는 또 내년에 입법이 추진된다 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총기 규제안처럼 의결까지는 상당한 공방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타임스는 이미 필립모리스 등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해온 굴지의 담배회사들이 공화당 상원의원 등을 상대로 개별적인 로비를 시작했으며 "담배회사들이 청소년에 대한 판매금지 등의 조치를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전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이번 판결 직후 "담배 규제는 당연히 의회에서 먼저 결정할 문제" 라고 말해 "FDA의 규제가 바람직한 것이었다" 고 말한 앨 고어 부통령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공화당이 담배 규제에 미온적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의회에서 담배 규제안이 전격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언론들은 국민 사이에 담배의 해악에 대한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강력한 압력집단들이 지켜보고 있어 담배회사조차 규제안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번 판결로 담배회사들은 한숨돌렸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1996년 플로리다 주 법원이 폐암을 앓는 흡연자에게 담배 제조업체가 75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뒤 봇물처럼 터진 소송이 숨통을 조이고 있어서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담배가 해롭지 않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담배회사들을 실망시켰다.

미국 플로리다 법원에는 30만명의 원고가 동시에 낸 수백억달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계류 중으로 이 소송에서 담배회사가 패할 경우 상당수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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