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발리 훈풍’ 금강산까지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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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오는 29일 남북 당국 간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을 갖자고 북한에 제의한 것은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남북 비핵화 회담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북 밀가루 지원을 8개월 만에 허용한 점과 맞물려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경색됐던 남북 관계가 변곡점을 맞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회담 카드는 정부가 먼저 꺼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명박 정부 출범 5개월 만인 2008년 7월 북한 경비병에 의한 남한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문제는 남북 관계를 꼬이게 한 출발점이었다. 1998년 11월 관광 시작 이후 4억8700만 달러를 챙긴 북한으로서는 타격이었다. 북한은 관광 재개를 압박했지만 진상조사와 사과·재발 방지를 요구한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북한은 5월 31일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만들어 중국 등을 상대로 관광에 나서겠다며 남측 재산 처분 입장을 밝혔다. 남측 기업을 지난달 29일과 이달 13일 불러들였지만 정부는 민관 합동대표단을 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이번 회담 제의에 대해 “금강산 지역에 있는 우리 사업자의 재산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광과 관련한 다른 문제들도 협의할 수 있을 것”(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이라고 말해 관광 재개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26일 민화협이 300t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2500t가량의 대북 밀가루 지원이 재개되는 것도 거칠었던 남북 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용으로 빼돌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정부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북 반출을 금지했던 밀가루를 풀어준 것은 의미가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이번 조치를 남북 비핵화 회담을 지켜본 다음 내놓은 점은 주목거리다. 그동안의 대북 강경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나 유연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 한·미 공조도 탄탄한 상황이라 북한이 북·미 관계 진전을 겨냥해 남북대화를 형식적으로 하는 방식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남북 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이 군사 실무회담 재개 카드를 다시 들고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5월 말 북한의 베이징 비밀접촉 왜곡·폭로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다시 제3국에서 물밑 대화를 재개했다는 설도 퍼지고 있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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