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사망 러시아 유람선 침몰 때 다른 배 리잘린 선장이 70명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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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야호 침몰사고에서 70명을 구한 로만 리잘린 선장.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 웹사이트]

지난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중부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볼가강에서 침몰, 12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러시아의 유람선 ‘불가리야호’ 사고에서 7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의 영문 온라인 뉴스사이트 ‘모스코 뉴스’는 12일 불가리야호의 침몰 상황에서 발 빠르게 대처해 인명을 구해낸 유람선 ‘아라벨라호’의 선장 로만 리잘린(30)의 영웅적 사례를 소개했다.

 모스코 뉴스에 따르면 리잘린 선장은 10일 오후 볼가강에서 아라벨라호를 몰고 항해하던 중 불가리야호가 침몰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주변에 또 다른 유람선 두 척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리잘린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 유람선들은 구조는 외면한 채 무심하게 침몰 현장을 지나쳐 버렸다.

 리잘린 선장은 “불가리야호에 탄 사람들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한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살려달라고 외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가까스로 띄운 불가리야호의 구명 보트 2척은 너무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데다 물에 빠진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불가리야호는 배에 이상이 생긴 지 불과 3분 만에 완전 침몰했다.

 위기 상황을 감지한 리잘린 선장은 아라벨라호를 침몰 현장 가까이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즉각 아라벨라호에 있던 4척의 구명 보트를 동원했다. 선장 자신도 구명 보트에 올라 직접 노를 저었다. 동시에 조난 당한 사람들이 구조 때까지 물 위에 떠서 숨쉴 수 있도록 아라벨라호 승객들에게 아라벨라호에 있던 구명조끼를 강물에 던질 것도 요청했다. 이어 구조된 사람들이 아라벨라호에 올라타자 아라벨라호 승객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어주며 체온 하락을 막았다. 이렇게 아라벨라호를 통해 생명을 구한 사람은 70명이 넘는다고 모스코 뉴스는 전했다.

 이런 영웅담이 전해지자 지나쳐간 두 척의 유람선에 대한 비난도 함께 쏟아졌다. 이고르 레비틴 러시아 교통장관은 “구조에 나서지 않은 두 배의 이름과 선장의 신원을 파악해 이미 조사 중”이라며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이들에게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승객과 승무원 등 208명을 태운 불가리야호는 수심 20m의 볼가강에서 침몰해 120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악천후, 선장의 조종 실수, 엔진 고장, 선체 노후 등 여러 가지 침몰 원인에 대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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