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탁상 행정, 서민만 힘들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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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기료 연 2억5200만원 절약, 인건비 77억원 감축, 일용직 46명 일자리 축소. 인천공항 옆 스카이 72 골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언뜻 보면 불합리한 낭비 요인을 제거한 경영합리화 조치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야간 개장 때 들던 전기료와 인건비가 줄어드는 대신 회사 측의 매출 손실은 그것의 약 두 배가 된다. 그로 인해 정부는 32억원의 세금을 놓치게 된다. 무엇보다 살기 어려운 서민들의 삶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결과가 빚어진다. 야간 개장을 하지 못하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캐디들의 수입도 줄어들고 그중 일부는 아예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앞세워 시행하고 있는 ‘등화관제’가 빚어낸 결과다. 전기 아끼겠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인 정책이 서민경제 활성화 정책에 오히려 발목을 잡는 역설이다. 명분은 그럴듯한데 결과는 영 딴판인 탁상(卓上) 행정의 전형이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3월 8일부터 대형 상가·아파트·유흥업소·골프장 등의 야간 조명을 단속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국민 모두가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전기를 아끼는 것은 권장돼야 한다.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최대 전력소비량 대비 예비전력 비율은 아직도 안정권인 10%를 밑돌고 있다. 올해 이 비율은 6.6%,2012년 7.3%,2013년 8.6%로 예상된다. 2014년이 돼야 13.9%로 높아진다. 당분간 전력난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에너지 절약은 필요하다.

 이런 당위성이 있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 일률적으로 줄이라고 지시하는 것은 값싼 정책이다. 깊은 생각 없이 과거에 그렇게 했으니 올해도 한다는 관성에 근거한 정책이라면 공무원 월급이 아깝다. 야간 경제활동이 날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불 끄기로 대처한다는 발상부터 진부하다. 한국골프장경영자협회는 지경부에 낸 공개질의서에서 야간 개장을 막아 생기는 전기요금 절감액은 128억원인 반면 매출 감소는 60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낼 세금도 755억원 줄어들고 정규직 5040명과 비정규직 61만 명(연인원)의 일자리도 사라진다고 했다. 야간 조명 제한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만 내겠다며 정부 지시를 어기고 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생겨나고 있다. ‘공무원들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경시 풍조만 확산시키는 것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가진 사람들이 돈을 써야 사회에 돈이 돈다. 서민 경제가 어렵다고들 야단이다. 가진 사람이 지갑을 닫으면 없는 사람은 더 힘들어진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현실성 없고,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공무원이 정책을 만들 땐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파악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