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감독은 연인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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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은 프랑스 여배우 잔 모로(72)는 영화제 기간 중인 13일 로제 바딤 감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한 방 얻어 맞은 기분" 이라고 말했다.
바딤과 동갑인 그녀는 '위험한 관계' 등 바딤의 영화에 몇 편 출연했지만 의견 충돌이 잦아 관계가 썩 편치는 않았다고 한다.

모로는 "그는 늘 나에게'한번만 더 연기할 수 없느냐' 며 구걸하듯이 애원했고 나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며 "당시엔 '이 악한이 언제까지 사나 두고 보자' 는 심정이었지만 막상 세상을 떴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 고 덧붙였다.

프랑수아 트뤼포.루이 말.오손 웰스 등 당대 최고 감독들 작품에 출연하고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했던 그녀는 "배우에게 감독은 연인과 같다" 고 말했다."영화를 찍는 동안엔 감독과 비상한 친밀성이 생긴다. 육체적인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는 것.
'쥘과 짐' (트뤼포)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루이 말) 등에 출연했던 모로는 "프랑스의 누벨 바그야말로 진정한 해방운동이었다" 고 평가했다.

"누벨 바그 시절에는 계급이 없었다.
제작진은 모두 동등하게 대접받았고 제작방식에서도 자연 조명을 사용하고 카메라를 들고 찍는 등 혁신적인 분위기가 넘쳤으며 스태프는 소규모로 편성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계에 계급이 다시 살아났다. 1급 배우와 2급 배우로 나뉘고 분장사.이용사.운전사 등으로 인력이 세분됐으며 비싼 기계장비들이 도입됐다. 나는 누벨 바그의 단순함에서 배운게 많다.
지금 베를린에 와서도 머리 손질을 손수 하고 옷을 고를 때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그 시절부터 몸에 밴 생활태도다."

그녀는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연기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녀의 연기는 타고난 것일까 노력으로 얻은 것일까.
"신의 선물이다. 나 자신을 정원에 핀 한 송이 장미로 비유한다.
물이 나를 통과해서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배우는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지적인 인간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 시간을 무대에서 때우는 배우에게 지식인이 될 만한 시간은 별로 없다.

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감독이 '배우는 언제나 빈 상자여야 한다' 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것을 담아도 가능할 수 있도록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텅 비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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