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계부채 팽창에 쐐기 박을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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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이 가계부채라는 점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이제는 나라 바깥에서 더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3월 말 기준으로 우리의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돌파하자 여기저기에서 경보음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는 은행을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언론들도 일제히 “한국은 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부채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기준금리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포인트 올랐지만 가계부채 증가세는 여전하다. 은행들은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기준금리가 올라도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대 후반에서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하지만 대출받아 집을 장만한 상당수의 30~40대 가장들은 이미 이자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자의 약 39%가 만기 연장 없이는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다.

 가계부채의 악순환을 방치하면 경기 침체나 집값 폭락이 닥칠 경우 경제 전체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또한 지금은 주택담보대출액의 80% 이상이 거치기간에 이자만 내고 있지만, 거치기간이 끝나면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한다. 그만큼 상환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한은조차 가계부채발(發) 경제위기가 두려워 기준금리 인상까지 망설여야 할 지경이 됐다.

 경제 위기의 뇌관은 미리 제거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일본의 거품 붕괴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가계 빚을 소홀히 여기다 대재앙(大災殃)으로 이어졌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기준금리를 서서히 올리면서 가계부채 팽창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들의 가계대출 과열 경쟁에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비중의 변동금리형 대출을 고정금리형으로 강력히 유도해야 최소한의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다. 가계대출이 우리 경제의 악성 종양으로 번지기 전에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