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비즈 북스] 노예처럼 일하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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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가운데 누가 더 행복할까.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거니와, 생각보다 복잡하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실업자의 입장에선 일을 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타는 사람이 부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한다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 있다. 생계에 걱정이 없는 사람조차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도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근면과 성실, 직장에 대한 헌신과 충성심은 현대 사회의 도덕률이 됐다. 이 판에 도대체 '일'이란 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는 것은 배부른 자의 사치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성공한 예술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서 산다.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기회가 닿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그 때문에 크게 불행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일'이 각자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 노예처럼 일하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일의 의미'와 '의미있는 일'을 찾는 일은 겹으로 중요하다. 특히 불의에 실직이라도 당하거나 직장에서의 불만이 큰 사람에게 일의 의미는 갑자기 실존적인 현안으로 다가온다.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철학자로 꼽히는 조안 B.사울라교수(리치먼드대)의 '일의 발견'(다우)은 일이 무엇이고,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일'과 관련된 각종 어휘의 어원을 꼼꼼히 찾아내고, 시대별로 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밝혀냈다. 고대나 중세에는 일에 대한 관념이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인식과 사뭇 달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보다는 여가를 훨씬 더 중시했으며, 중세까지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천대받던 일은 종교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축복받은 특권'이자 '신이 내린 소명'으로까지 격상된다.

그러나 저자는 근대 이후 일의 가치가 높아졌지만 현대인이 여전히 일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각종 경영학 이론들은 온갖 수사에도 불구하고 피고용인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쥐어짜기 위해 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일이 의미있다고 여기지만 끊임없이 일로부터 배반당한다는 것이다. 일이 인간을 배반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은 해고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실직할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헌신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러나 이같은 질곡에서 벗어날 대안은 뚜렷하지 않다. 저자는 다만 "일에 삶을 꿰어맞추는 대신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일을 통합시키라"고 말할 뿐이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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