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승부처 - 그 깜깜한 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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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 2국>
○·박정환 9단 ●·허영호 8단

제11보(114∼124)=머리털이 곤두서는 승부처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해한 국면에서 끝까지 수를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가 다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수를 읽어간다.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깜깜한 어둠 속을 기어간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박정환 9단이 머리를 들더니 116의 포위를 선택했다. 114의 선수는 아깝지만 응원군 하나를 확보한 것. 이번엔 허영호 8단 차례다.

 ‘참고도1’ 흑1로 몬다면 백은 2로 이을 것이다. 그다음 3으로 뛰어나가는 수. 이게 된다면 참으로 만사는 끝난다. 하지만 백이 4-8로 완강하게 포위하면 뒤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없다. 좀 무식하지만 ‘참고도2’ 흑1로 곧장 밀고 나가는 것은 어떨까. 역시 백8에 이르러 포위망은 미동도 하지 않는 느낌이다.

 허영호는 117을 선택했다. ‘참고도1’ 흑1과 백2의 교환을 이적수라고 판단한 것이지만 힘든 결단이다. 하지만 박정환도 진로를 바꾼다. 포위 대신 118의 절단을 들고 나온다. 121에 122로 물러서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흑의 뒤 공배가 꽉 메워진 장점이 있다. 그동안 흑이 얻은 것은 A의 막기가 선수라는 것. 123으로 수읽기는 점점 더욱 깜깜한 미로로 빠져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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