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어머니는 시리아 출신 … 집안에서 “노예의 자식” 구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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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수억 달러의 재력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상징적 존재. 9·11 테러의 주역 오사마 빈 라덴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정작 가족과 그가 자란 고향에선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빈 라덴의 생애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어머니의 외국 혈통 등 빈 라덴이 가진 태생적 한계는 그를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계의 북극성’으로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빈 라덴의 아버지는 예멘 출신의 가난한 짐꾼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덴이다. 193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한 무함마드는 특유의 친화력과 비즈니스 수완을 바탕으로 사우디 왕가와 친분을 맺은 뒤 메카와 메디나의 이슬람 사원과 왕궁·도로 건설 사업을 독점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빈 라덴이 테러자금을 댈 수 있었던 원천도 1970년(또는 6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준 3억 달러(약 3200억원)의 유산이었다. 무함마드는 성공한 뒤에도 자신의 자택 응접실에 짐꾼 시절 썼던 운반 가방을 전시해 놓고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는 인물이었다. 자식들이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어린 오사마도 여름 내내 도로 공사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빈 라덴은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는 후일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하루에 이슬람 3대 성지(메카·메디나·예루살렘)를 모두 돌며 기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독실한 무슬림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50명이 넘는 형제 중 22번째(17번째란 설도 있음)로 태어난 빈 라덴은 아버지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했다. 오히려 외국 출신 생모와 함께 집안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무함마드가 해외 휴가 중 우연히 만나 결혼한 빈 라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인 중 가장 어렸다. 아랍 특유의 혈통 중시 문화로 인해 시리아 출신인 어머니는 집안에서 ‘노예’라 불렸고 빈 라덴은 ‘노예의 자식’으로 통했다. 빈 라덴이 자라며 어울렸던 사우디 엘리트 계층 사이에서도 양친 모두가 외국인인 경우는 흔치 않아 많은 무시를 당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빈 라덴 가족의 지인을 인용해 “빈 라덴은 자라는 동안 이중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가 예멘 출신이라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고, 가족 사이에선 어머니가 외국 출신이라고 또 괄시를 받았다”며 “이것이 그가 성장하는 동안 받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형제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공부하지 못하고 청년이 되기 전까지 중동을 떠나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NYT는 “잦은 해외생활로 미국인과 친근했던 형제들과 달리 빈 라덴은 서양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했다”며 “이것이 그가 미국을 더 낯설어하고, 형제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분석했다. 오사마의 이런 배경이 그가 사우디에서 대학 교육을 받으며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에 경도되고 결국 이슬람 과격주의의 길로 가게 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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