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심각해야 할 ‘운동권 소설’ 웃음 터지는 건 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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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창비
260쪽, 1만1000원

‘전남 순양군 진평리’라는 가상의 행정구역을 배경으로 쇄석(碎石)공장을 둘러싼 민·관, 민·민 갈등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과 막대한 양의 먼지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 마을 주민들은 공장·군청·감사원 등을 상대로 잇따라 민원을 제기한다. 민초(民草)들의 안락한 생활쯤이야 하찮게 여기는 권위주의적인 나랏님들, 공장을 폐쇄해달라는 민원을 순순히 들어줄 리 없다. 이윤 창출이 지상목표인 공장이야 말해 무엇하랴. 해서 민·관 갈등, 민(공장)·민(주민) 갈등이다.

 갈등의 수위는 가파르다. 도심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후 우연찮게 진평리로 흘러들었다가 얼떨결에 주민 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주인공 이영희.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주민 개개인이 느끼는 심적인 압박감과 육체적 피로도는 극심하다.

 하지만 소설은 치열하고 각박한 ‘이념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럽고 윤기 있으면서도 웃음이 실실 새나오는 따뜻한 ‘운동권 소설’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우선 항의 시위에 나서는 주민들이 모두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젊게는 60대 초반부터 많게는 90대 초반의 노인도 있다. 고향과 땅에 대해 큰 애착이 없는 젊은이들이 적당한 타협을 찾아 뒤로 물러난 탓이다. ‘데모’라는 말도 어색해 사투리가 가미된 ‘디모’라고 말하는, 노인들의 데모에 대한 개념 정의가 재미 있다. 디모는 다름 아닌 ‘상전 앞에서도 헐 말을 허는 것’이다.

 남도 사투리의 공도 큰 것 같다. 노인들이 단체로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서를 작성하는 장면은 한바탕 소극(笑劇)이다. 경찰이 이름을 묻자 오명순 할머니는 오맹순, 임애기 할머니는 이매기라고 답한다. 시위 참여 동기를 묻자 “내가 내 발로 나온 것인디?”, 직업을 묻자 “땅 파묵고 살제에”라고 답한다.

 시인 지망생인 이영희, 소설가 서해정 등이 무반성적이다 싶게 노인들 편에 서는 것은 불만스럽다. 양심적인 인간성의 화신들 같다. 그런 점에도 소설은, 이토록 심각한 소재를 이토록 개운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다니, 감탄을 하게 만든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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