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의 평양 쇼'에 전기 끊겨 열차까지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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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고위층이나 기자단이 왔을 때의 평양의 밤 [출처=중앙포토]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평양 주민들은 화려한 조명과 콸콸 나오는 수돗물 덕에 잠시나마 편안하게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지방은 딴판이었다. 전기 공급이 중단돼 열차 운행이 끊기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당국이 카터 일행에게 잘 보이려고 평양에 수돗물과 전기를 집중적으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평소 불꺼진 평양의 밤-금수산 궁전만 환하다 [출처=차오시안]

28일 열린북한방송에 따르면 평양의 한 소식통은 “카터 일행의 방북 기간 중 당국이 일반 공업용 전기는 물론 기차를 운행하는데 필요한 전기까지 평양에 사용해 지방엔 전기가 끊기고 여객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평양에 올라온 지방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발이 묶였다. 지방과 평양을 오가는 여객 열차는 전기로 운행이 되는데 평양에만 전기가 쏠려 지방으로 가는 열차가 며칠씩 연착된 것이다. 한 소식통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여비도 다 떨어진 상태로 발을 동동 굴렀다"고 전했다.

외국 손님이 평양에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당국은 평양을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평소 잘 안 나오던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전기도 풍족하게 공급된다. 건물 조명과 분수대가 켜지고 평양 만경대 유희장과 동물원을 비롯해 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 기념 궁전과 아리랑 대 집단 체조 공연장도 화려하게 불을 밝힌다.

돈이 좀 넉넉한 일부 지방 주민들은 평양으로 차출되기도 한다. 당국이 강제로 금수산 기념 궁전 참관, 아리랑 대집단 체조 관람을 하도록 시켜 돈을 긁어내는 것이다. 사람도 불러모으고 돈도 뜯는 전시효과다.

또 다른 소식통은 "2005년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평양에 왔을 때 며칠 동안 수돗물도 잘 나오고 전기도 끊기지 않아 좋았던 기억이 난다”며 "외국 귀빈들, 특히 기자들이 많이 오면 집에서 풀죽을 먹으면서도 쌀밥에 돼지고기를 먹고 나온 것처럼 '쇼'를 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북한현실"이라고 전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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