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년 전 재탕'이라는 안일한 북핵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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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5㎿e 원자로 사용후 핵연료봉 인출은 새로운 악화조치라고 볼 수 없고, 2년 전 상황이 재탕된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상황'이란 북한이 2003년 2월 원자로를 가동한 뒤 사용후 핵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끝냈다고 주장했던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당국자의 이러한 현실 인식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현재의 북핵 사태는 2년 전과 차원을 달리하는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플루토늄을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도를 변경시켰다'는 식의 주장은 했으나, 핵보유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의 기조는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핵보유를 '외무성 성명'으로 공식 천명한 이후 북핵 위기 상황은 그 기본틀이 바뀌었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온 "핵보유국이 된 만큼 6자회담은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핵무기고를 늘리는데 필요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 나가겠다"는 주장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2년 전 상황의 재탕'이라니 지난 2년간 북한의 핵개발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재 한.미.중 사이에선 북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물밑 협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2년 전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심각해진 사태 진전을 애써 외면하려는 이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그렇다면 미.중 정상이 왜 긴급 전화회담을 하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왜 '새로운 상황이 됐다'고 한국 대통령에게 말했는가.

외교장관은 불과 얼마 전 북핵이 '심각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별것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러한 냉.온탕이 국민의 북핵 불감증을 키워 가는 것이다. 있는 현실을 축소한다고 무슨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국민이 안심한다는 점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