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학생까지 … 250억 모아 2만1500명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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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년간 장학사업에 매진해온 경남기업 성완종(60·사진) 회장은 제 때 못 배운 사람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들이면서 일어난 가정불화로 12세의 그는 가출해 상경한다. 그 후 신문배달, 공사판 잡부 등 온갖 궂은 일들을 해야 했던 터라 정규교육의 기회를 놓쳤다. 고된 생활 속에도 그는 교회에 개설된 야간학교에서 밤을 새워가며 피나게 공부했다. 늘 신문도 통독해 풍부한 지식을 갖췄다. 그럼에도 변변치 않은 학력의 소유자란 딱지를 뗄 순 없었다. 그런 설움을 겪던 그가 세운 서산재단이 국내 굴지의 장학재단으로 자라 18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6일 그의 소회를 들었다.

 - 장학재단을 세운 까닭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교회 야간학교에서 공부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처럼 어려운 후배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또 32세에 혼자된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 받은 도움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이게 늘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 정규학교를 못 다닌 데 따른 어려움도 작용했나.

 “그렇다. 촌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학연도 없이 사업 하려니 이런저런 고초가 말도 못했다. 어떤 사업을 하든 공부도 못한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느냐, 누구랑 친해서 저런 다더라 등등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학연 없는 서러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이 역시 장학재단 설립의 배경이 됐던 것 같다.”

 - 그간 몇 명이 혜택을 입었나.

 “서산재단은 지난 20년간 250여 억 원의 기금을 조성, 이 중 130여 억 원을 장학금으로 사용해 2만1500여 명이 혜택을 봤다. 나머지 돈은 문화사업과 사회복지사업 등에 썼다.”

 - 한때 장학재단이 어려워져 적극적 구명운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는데.

 “회사 운영이 악화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장학재단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분들이 적극 나서서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우리 단체는 재단 회원들이 누구에게 장학금을 줄지를 결정한다. 20년간 함께 활동해온 회원들로서는 재단에 정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 같은 동질감을 느낀 이들이 서명운동을 벌였고 덕분에 재단도 무사히 운영되고 있다.”

 - 해외도 지원한다는데.

 “한국전 참전국인 에티오피아 대학생들 120명에게 매년 500달러씩 6만 달러를 주고 있다. 이 나라에선 500달러면 학비에 기숙사비까지 해결된다. 장학금 전달식 때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이 많이 와 부둥켜안고 고마워했다. 또 청렴하기로 유명했던 잠롱 전 방콕 시장의 리더십스쿨에 연간 1만 달러씩 지원한다.”

 -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물려준다고 했다는데.

 “12년 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두 아들에겐 작은 아파트 한 채씩만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시 큰 아이는 19세, 둘째는 14세로 어렸다. 취지를 설명하니 아내와 아들 모두 선선히 동의했다.”

 - 향후 재단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지금까지는 어려운 국내 학생들을 위주로 도와왔지만 앞으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국제적인 인재를 찾아 조건 없이 지원해 주고 싶다.”

글=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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