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전사태 보도한 외신에 “일본 이미지 떨어뜨린다” … 재외공관에 항의토록 훈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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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사고를 보도하는 외신 내용을 일일이 트집잡고 나섰다. “일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지난달 28일에는 일본 외무성이 “일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잘못된 보도는 즉시 정정하도록 하라”는 내용의 훈령을 모든 재외공관에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에 따르면 다카하시 치아키(高橋千秋) 일본 외무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원전 사고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보도하는 해외 언론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를 찾아 잘못된 내용을 신속히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일본측은 그 예로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지난달 15일 보도한 것을 들었다. 이 신문은 버섯구름 3개가 나란히 그려져있는 만화를 게재했다. 만화에는 ‘히로시마ㆍ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라는 제목이 붙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빗댄 것이다. 이에 일본 총영사는 “이번 사고를 원폭 투하와 같은 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신문은 일본의 요청을 수용해 인터넷에서 관련 만화를 지웠다.

지난달 말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수습하던 근로자 5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을 긴급속보로 타전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일본 대사관은 “명백한 사실 오인”이라고 발끈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물론 잘못된 기사에는 정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외신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고 말 바꾸기를 거듭한 탓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프랑스 등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들이 "일본 정부는 원전 사태와 관련된 정보를 즉각 제공해야 한다"며 수차례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은 “일본 정부가 충분히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말을 계속 바꿔 믿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일본 네티즌들 조차 “안에서 새는 방사능 사태를 밖에서 막으려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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