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총장의 ‘돈봉투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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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격려금 명목의 ‘돈봉투’를 돌려 물의를 빚고 있다. 2일 열린 ‘전국 검사장 워크숍’에서 참석자 45명에게 200만~300만원씩 나눠줬다고 한다. ‘업무활동비, 검찰총장 김준규’라고 쓴 봉투에 담긴 돈은 모두 9800만원으로,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 ‘검찰 미래 전략과 국민 존중·소통 방안’을 논의하는 워크숍에서 구시대적 ‘돈봉투 잔치’를 벌였다니 개탄스럽다.

 검찰총장에게는 특수활동비라는 게 있다. 범죄정보 수집과 수사활동에 쓰는 경비다. 검찰총장이 일선 검찰청을 방문했을 때 격려금이나 전국 검사장 회의·외부 행사에 참석했을 때 금일봉·의전비 등으로 지출되기도 한다. 사용내역이 공개되면 국가기밀이 샐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수증이 없어도 된다. 올해 김 총장에게 189억원이 책정됐다. 검찰의 업무 특성상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 다른 기관장들도 연간 8000억원대의 특수활동비를 나눠 쓰고 있다. 그렇다고 189억원을 김 총장이 비자금(秘資金)처럼 맘대로 쓰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다.

 김 총장은 2009년 11월 기자들에게 돈봉투를 건넸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런 부적절한 행태가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계속되고 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일선 검찰청에 수사비를 보태주려면 조용히 전달하면 그만이다. 국민 세금에서 나온 돈을 놓고 한쪽에서 시혜를 베풀고 다른 한쪽에선 감읍(感泣)하며 받는 구태를 ‘미풍양속’인 양 착각하고 있다면 문제다. 이러니 검찰 수술에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이다. “검찰은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라는 작가 김훈씨의 지적이 국민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검찰총장은 국가 공권력의 상징적 인물이다. 처신에 무게와 깊이가 있어야 한다. 볼썽사나운 관행이라면 없애버리는 게 낫다. 검찰총장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1억원에 가까운 돈을 푸는 검찰의 관행과 문화를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낯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