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뒤에 오리온 비자금 의혹] 한상률 전 청장 “학동마을 홧김에 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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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상률(58) 전 국세청장이 검찰에서 “고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 그림은 홧김에 산 것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한 전 청장은 2007년 1월 측근을 시켜 서미갤러리에서 500만원을 주고 학동마을을 구입한 뒤 그해 5월 당시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진술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구입 경위를 캐묻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당시 그림을 구입하려고 서미갤러리에 직접 전화를 걸어 ‘5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그림이 어떤 것이냐’고 직원에게 물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갤러리 직원이 “우리는 그런 싼 그림은 팔지 않는다”고 불손하게 응대해 기분이 크게 상했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은 “오기가 나서 ‘무엇이든 하나 살 테니 추천해달라’고 채근했고 마침 가격에 맞는 그림이 ‘학동마을’ 하나뿐이어서 사게 됐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은 인사 청탁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는 전군표 청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지방청장이라는 ‘별’을 달아주기 위해 6개월마다 인사를 하던 때였고 내가 견제해 달라고 지목했다는 국세청 간부도 마지막 자리로 승진한 것이어서 부탁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한 전 청장이 그 시기에, 어떤 목적으로 500만원 상당의 그림을 샀는지를 밝히는 게 그림 로비 의혹 수사의 관건”이라며 “전 전 청장 부부와 한 전 청장 부부, 그림 심부름을 한 장모씨 등의 진술을 근거로 실체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자택에서 압수한 10여 점의 그림은 조사 결과 100만~200만원짜리로 파악됨에 따라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 전 청장이 대기업들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받은 5억원의 성격과 관련해 수사팀 관계자는 “국세청장을 지낸 한 전 청장에게 전관예우 차원에서 준 것인지, 아니면 대가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학동마을=고(故) 최욱경(1940~1985) 화백이 1984년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38X45.5㎝ 크기의 추상화. 시가는 3000만~5000만원 선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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