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투자 ABC] 장기투자 할 것인가 단기 매매 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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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생산·물가·고용 등이 상승하는 시기와 하락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순환을 반복하는 것을 ‘경기’라고 한다.

 그런데 경기라는 단어가 주식시장으로 들어오면 ‘경기선행지수’라는 단어로 바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경기선행지수의 한 사이클은 대략 4년이었다. 이후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한 사이클이 약 2년으로 진폭이 크게 줄었다. 장기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1년은 좋아지고, 1년은 나빠지는 경기지표에만 의존해 투자전략을 짜기에는 주기가 좀 짧다.

 주식을 한번 사면 10년 이상 보유하는 워런 버핏은 경기라는 단어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는 주가 수익비율(PER)과 주가 순자산비율(PBR) 등 가치가 낮은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성장하면서 돈을 잘 버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장기투자는 경기가 오르고 내리는 방향보다 기업의 매출과 이익의 장기적인 우상향 추세가 중요하다. 20년 전 3만원 하던 삼성전자가 30배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배경은 경기를 잘 타서가 아니라 자산이 늘어나면서 매출과 주주자본 역시 함께 증가했기 때문이다(96년을 제외하고 주주자본은 계속 증가). 그러나 삼성전자의 환상적인 기록은 과거의 일이다. 장기투자에선 매출(=판매가격X판매수량), 그중에서도 판매수량을 주목해야 한다.

 정말 경쟁력이 있는데 가격이 높아 부담스러웠던 제품이 기술혁신 등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신흥 시장에서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비싼 가격에 파는 기업보다 싼 가격에 많이 파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유망할 것이다.

 그러나 증권사 시황과 신문을 보고 투자판단을 하는 투자자는 장기투자의 정석보다는 매매의 정석이 더 중요하다.

 투자자는 주식시장에 참여하기 전에 장기투자를 할 것인가, 매매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한다. 장기투자의 세계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미래를 고스란히 반영하지만, 매매의 세계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또 다른 세상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현실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주식시장의 독특한 성격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자신의 이성과 반대로 가는 것이 매매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

 매매에서 뼈아픈 손실을 본 투자자는 주식시장은 나쁜 사람만 모여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시장에서 빠져 나온다. 매매의 세계는 현실(펀더멘털)과 가상의 현실(주식시장)이 서로 평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과감하게 끊어 버린다. 단기적인 시세가 대중의 생각과 주로 반대로 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매매로 돈을 벌고 싶다면 현실과 가상의 현실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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