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매일 1만원씩 저축 1억 모아 장학금

중앙일보

입력

“사업상 빚을 끌어다 쓸 정도로 쪼들릴 때도 매일 1만원씩을 꼭 저축해 왔어요.”

조경수 사업을 하는 서정현(徐廷賢·50·전남 순천시 향동)
씨.그는 지난 20년간 이런 방식으로 현금 1억75만5천원을 모았다.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저축이 아니었다.

그는 불쑥 18일 순천대를 방문,이 돈을 불우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기탁했다.
徐씨가 이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지난 79년 10월.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6세·9세 가량의 두 고아 형제가 허기져 구걸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에게 5천원을 쥐어준 뒤 고속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는 ‘앞으로 30년간 매일 1만원씩 모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자’고 결심했다.그날 즉시 농협으로 달려가 별도의 통장을 만들었다.

徐씨는 7세 때 부친을 병환으로 잃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경수 농장에 일꾼으로 들어간 탓에 누구보다 배움에 대한 사무침이 깊었다. 그러던 그에게 고아 형제의 모습은 ‘불우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자’는 자신의 결심을 더욱 다잡게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뒤 매일 은행에 갈 수는 없었지만 한달을 넘기지 않고 하루 1만원꼴로 저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50여개가 넘는 그의 ‘특별통장’에 줄줄이 찍혀있는 입금 날짜와 입금액이 그의 의지를 읽게해준다.

그러나 그는 가족 등 주변 누구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통장도 몰래 관리해왔다.
당초 회갑 때까지 3억원을 모아 기탁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2월 부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시기를 앞당겼다.자신의 뜻을 펴보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풍족한 집이 아닌데도 큰딸(18·대학 1년)
등 슬하의 다섯 딸은 아버지의 뜻을 뒤늦게 알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기탁에 기꺼이 찬성했다.

앞으로 그는 다시 통장을 하나 만들어 하루 2만원씩 모을 계획이다.자신의 “불우청소년을 돕겠다”는 구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한편 순천대는 기부 금액에 일부를 보태 ‘서정현 장학금’을 마련,徐씨의 뜻을 값지게 쓰기로 했다.

매일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 일 수 있는 1만원권이 탄생한 이후 아마도 제일 아름답게 활용한 이가 徐씨일 것이다.그는 “나의 삶 자체가 주변의 도움 덕이니 이웃을 돕는 것은 의무일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순천=천창환 기자 <chunc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