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새벽 - 리비아 공습] 안보리 1973호는 ‘전쟁 백지수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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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남쪽 밥 알 아지지아 구역을 방문한 카다피의 딸 아이샤가 리비아 국기를 흔들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비아 공습을 결정한 18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호는 유엔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군사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29개 항으로 구성된 1973호는 리비아 전역을 대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6~12항). 리비아 정부군의 제공권을 박탈한 것이다. 여기다 ‘유엔 회원국이 민간인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4항). 이 조항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의 주문으로 포함됐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전했다.

 비록 군사조치를 취하기 전에 유엔과 아랍연맹(AL) 사무총장에게 미리 통보하고 협조를 구하게 했으나, 연합군으로 하여금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리비아 정부군을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다만 외국 군대가 리비아 영토를 점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못 박아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배제했다. 과거에도 유엔이 군사 개입에 나선 적은 많다. 대표적인 게 1950년 한국전, 1991년 걸프전 때다. 그런데 국가 간 전쟁이었던 한국전·걸프전과 달리 리비아 사태는 정부군과 시민군의 내전이다. 특정 국가의 내전에 유엔이 이번처럼 신속하고도 강력한 군사개입 조치를 취한 건 이례적이다. 92년 보스니아 내전 때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등 군사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엔 ‘인종 청소’와 같은 대량 학살 사태가 벌어진 다음 유엔이 개입해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안보리가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권한을 연합군에게 내준 건 그만큼 리비아 내전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주말을 고비로 시민군의 근거지인 벵가지가 함락될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군사조치를 위한 절차를 밟을 겨를이 없었다는 얘기다. 첫 공격을 미국·영국·프랑스가 사실상 주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1973호에서 규정한 유엔 사무총장 자문그룹이 구성되기도 전에 연합군의 공격이 이뤄졌다.

 일각에선 군사 개입이 장기화하면 혹시 있을지 모를 민간인 피해의 책임 소재를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군사 공격이 시작되자 중국·러시아 등은 비판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20일 “리비아에 대한 군사 공격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 알렉산드르 루카세비치 대변인도 “성급하게 채택된 유엔 결의에 의한 군사 개입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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