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중앙일보

입력

겨울이다. 이제 날씨도 점점 을씨년스러워질터이고, 하늘도 겨울답게 칙칙한 회색빛을 드리우는 날들이 많아질 것이다.
웬 난데없이 겨울타령이냐고 묻는 다면, 추워서 마음마저 더욱 외로와지고 쓸쓸해지는 이들에게 〈Hotel 아프리카〉의 따스함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Hotel 아프리카〉를 읽다보면 상념이 많아지게 된다. 엘비스와 가족, 그 친구들의 삶의 무늬들을 더듬어 나가다보면 어느새 내 지나온
삶의 무늬가 마음속에 되살아나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Hotel 아프리카〉는 느릿느릿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정말 '특별한 만화' 이다.

〈Hotel 아프리카〉 제 1권을 펼치면 박희정 작가로부터의 메세지가 보인다.
'이 글은 나와 Hotel Africa의 사람들이 띄우는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을 받은 설레이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보자.
우리의 사랑스런 엘비스와 그의 엄마인 아델라이드, 엘비스의 고집스러운 외할머니, 이들의 아주 특별한 가족 인디언 지오, 또 엘비스의 가장 친한 친구인 쥴과 에드, 이들을 중심으로 스쳐가는 소중한 인연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엮여진다.

〈Hotel 아프리카〉의 시작점은 다음과 같다.

엘비스의 어머니 아델라이드는 처녀 시절 자신이 살던 유타주의 시골마을이 지겨운 나머지 자신의 열렬한 우상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러가기 위해 무작정 대도시로 길을 떠난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에서 위험에 처한 순간 '검은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을 딴)란 이름으로 블루문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난한 흑인가수 트란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아델라이드는 따뜻하고 성실한 마음의 소유자인 트란에게 반하게 되고, 둘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트란의 가난한 아파트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날들...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동거를 곱게 봐 주지 않는 사람들의 멸시와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은 끄떡 없었다.
둘의 사랑은 '진짜'였으므로.

트란이 레코드 회사로부터 노래 취입을 제안받고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던 날, 트란은 아델라이드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아델라이드에게 약속을 한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예쁜 아델 할머니랑 노래하는 트란 할아버지의 작은 〈카페 아프리카〉를 함께 만들자고.

그러나 트란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만다. 클럽에서의 마지막 무대에서 노래하던 중 마이크에 감전되어 어이 없이 죽게 된다. 그 뒤 아델라이드는 슬픔에 젖어 뱃속에 엘비스를 가진 채 귀향을 하고 고집스러운 어머니를 설득하여 한적하고 외진 고향마을에 〈Hotel 아프리카〉를 열게 된다.
어린 엘비스의 유년의 추억과 꿈이 깃든 〈Hotel 아프리카〉.
여기까지가 엘비스와 〈Hotel 아프리카〉의 탄생 배경이다.

〈Hotel 아프리카〉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연기공부를 하며 'Hotel 아프리카'의 이야기들을 첫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엘비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과거의 회상과 교차되면서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Hotel 아프리카〉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엘비스이고, 주로 엘비스의 회상과 나레이션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긴 하지만 사실 각각의
에피소드 마다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사연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삶에 지쳐 돌아온 아델라이드의 친구가 다시 옛사랑을 되찾는가 하면, 이웃집 아저씨의 늙은 개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죽은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돌아온 그의 영혼과 함께 천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엘비스의 고교 시절의 방황, 쥴과 에드 각자의 힘든 사랑, 〈Hotel 아프리카〉를 우연히 찾아든 가출한 소년, 소녀, 어린 엘비스를 괴롭히던 꼬마 친척의 이야기 등 기쁨, 슬픔, 사랑, 고통, 꿈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그려진다.

인디언 지오에 관한 이야기도 〈Hotel 아프리카〉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
어느날 불쑥 〈Hotel 아프리카〉를 찾아온 지오. 글을 쓰는 지오의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에는 맑은 영혼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는 눈 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것을 보고 느끼며, 상처받은 것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남다른 힘을 지니고 있다.

지오는 어린 엘비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지오는 엘비스에게 아버지 대신이며, 엘비스에게 사물을 남달리 보도록 가르친 훌륭한 스승이기도 하고, 외로운 어린 엘비스의 따뜻한 친구이기도 하다.
생각컨대 지오와의 인연으로 엘비스는 보다 빛나는 영혼의 소유자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지오의 아델라이드에 대한 사랑 역시 특별하다. 아델라이드의 상처 입은 영혼을 무리하게 건드리지 않고 이를 한없이 넓은 사랑으로 포용하는 지오. 지오를 통해 기다림의 가치를, 사랑이 넓고 넓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Hotel 아프리카〉는 행복의 의미를 강요하듯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자연스러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저 느끼게 한다.
박희정의 〈Hotel 아프리카〉를 읽다보면 정말 스스로 소중한 존재가 되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일상의 권태로움에 대하여, 혹은 삶의 무게에 대하여, 또 존재의 외로움에 대하여 곧 잘 투덜거린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부딪치게 되면 대부분 주저하게 마련이다. 과연 내가 행복한지 의심에 찬 마음으로 자문하며.
누구나 꿈꾸는 행복. 혹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행복이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만을 바라고 있지나 않은지?

호텔 아프리카의 사람들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금보다 쬐끔 더 따뜻한 마음을 지니도록, 쬐끔 더 순수하게 살아보도록 노력해보자.
그럼 어느 사이엔가 '삶의 매직'을 만들어가는,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행복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세상이 창 밖의 나무처럼 메말라 보이는 겨울 한때, 포근한 담요에 무릎을 묻고 뜨거운 차한잔을 홀짝이며 〈호텔 아프리카〉의 사랑스런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순간 나의 차갑게 무뎌진 마음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P.S. : 덧붙여서 혹시 퍼시 애들론 감독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본 적이 있다면 〈Hotel 아프리카〉를 읽으면서 정말 닮은 꼴이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로부터 느껴본 '삶의 매직(magic)'에 대한 감동을 〈Hotel 아프리카〉를 통해 아주 색다른 감각으로 다시한번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작가 박희정은 1970년생으로 만화 동호회 [미지수] 창단 멤버이며 1993년 7월 윙크 창간호에 단편 [Summer Time]으로 데뷔하였다. 단편집으로는 〈만화가네 강아지〉가 있으며 장편으로는 〈I can't stop〉과 〈Hotel 아프리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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