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되고 싶은 '창녀'의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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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요베스트 - 위험한 자장가〉에 등장한 가정파괴범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보아 온 '위험한 여자'다. 이 단막극에는 영화 〈위험한 정사〉나 〈요람을 흔드는 손〉을 연상시키는 설정이 많이 등장했다. 한 마디로, 아이 또는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어 환장한 미친 여자가 착한 남편의 작은 실수를 빌미로 그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포기한 적이 있는 이 '위험한 여자'는 오래 전 같이 잔 적이 있는 남자의 단란한 가정에 들어가서 아이 보는 일을 한다. 자주 미친 년의 눈빛을 띠는 이 '위험한 여자'는 입양된 것으로 짐작되는 그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믿는다. 그녀와 하룻밤 잔 남자의 아내는 '착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를 둔 전형적인 '행복한 여자'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여자는 매우 대조적이다. '행복한 여자'는 사랑받는 아내이고 귀여운 딸의 엄마다. '위험한 여자'는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방탕한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남성 지배 사회에서 여자들이 분류되는 방식, 즉 '이브와 마리아', '창녀와 어머니'의 이분법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예다. 연애나 섹스 하기 좋은 여자와 아내 삼을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다. 이 드라마는 이런 이분법에 근거하여 행복한 어머니와 불행한 창녀, 정숙한 좋은 여자와 방탕한 나쁜 여자를 그려내고 있다.

물론 여성의 성 경험과 남자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이런 이분법은 매우 반여성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창녀는 동전의 양면이다. 남자들은 자기 자손을 낳아 잘 기르도록 아내는 집안에 묶어 두고, 훌륭한 어머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성적 서비스는 창녀에게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남자의 필요에 따라 여자들은 두 종류로 구분되어 각각 다른 역할을 할당받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또는 정숙한 아내는 성적인 존재여서는 안된다. 반면 성적으로 일부종사하지 않는 여성은 행복한 아내나 어머니의 자격이 없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에 이 '위험한 여자'는 갑자기 체제순응적인 여자로 변신하면서 "내 주제에 사랑받는 아내, 행복한 어머니의 자리를 넘보다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어. 에구 내 팔자야!" (실제로는 멋진 수사를 동원한 대사였지만 결국 이런 내용이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이럴 때 용감하고 힘센 남자가 나쁜 여자를 물리치고 행복한 가정을 파괴의 위기에서 구하는 것으로 끝난다.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헐리우드 식으로 응징당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더 나쁜 결론일까?

이런 결말은 어떨까? '행복한 여자'는 '착한 남편'이 과거에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위험한 여자'의 고통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배신한 남편이자, 여자를 헌신짝 취급하는 남자를 혼내주고 두 여자가 공동의 어머니 노릇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녀관계나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를 통해 이 '위험한 여자'가 외로움을 해소한다는 결말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옆집 할머니나 파출부 아줌마 같은 외롭거나 소외된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다. 독일 영화 〈파니 핑크〉(원제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의 결말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지만 실패하기만 하는데, 가난하고 병든 흑인 게이를 보살펴주면서 그 남자와 정말 좋은 친구 사이가 되고(그 남자는 동성애자니까 여자 주인공과 연애 감정으로 얽힐 일은 없다) 그 남자와 함께 있는 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파티를 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이제 주인공이 멋진 부자 남자를 만나기만 기다리는 대신 주위의 고단한 인생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가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신비화, 낭만화된 남녀 관계 안에서는 오히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류가 더 힘들어지기 쉽고, 어떤 형태의 가족 만이 유일한 바람직한 믿을 만한 인간관계라고 여겨질 때 그런 믿음은 다른 종류의 관계로 눈을 돌리기 어렵게 한다.

어머니가 되지 못해서 또는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제정신이 아닌 나쁜 여자가 공포의 근원이 되는 그런 이야기 구조에서 다른 결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그런 나쁜 여자는 공포 영화의 괴물 같은, 해소되어야 할 갈등이나 처치되어야 하는 문제거리라는 역할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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