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으로 몰고 간 정부 … 석 달간 쉬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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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 일부 영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문제가 된 이후 정부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축소와 은폐에 급급했다.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은 중국여성 덩신밍(33)과 불륜으로 물의를 빚은 H영사와 K영사 2명의 조기 귀임을 본부에 요청하면서 ‘현지생활 부적응’ 등 개인적인 사유 때문이라고 알렸다. 덩과의 내연관계와 그로 인한 비자 부정발급 문제는 숨긴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해당 영사 2명을 조기 귀국시킨 다음 소속 부처인 법무부와 지식경제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체 조사를 벌였으나 별일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법무부는 H영사를 감찰하는 과정에서 덩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비자 발급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H영사가 사표를 내자 문제를 종결했다. 그러나 이는 규정 위반이다. 비위 문제로 내사를 받는 공무원의 경우 의원면직을 신청해도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먼저 징계절차를 밟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비자 발급 과정에서의 규정 위반은 중한 게 아니고 불륜은 품위손상에 해당하지만 중징계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H영사의 사표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으나 ‘사표를 낸 동료를 봐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경부는 문제의 K영사에 대해 특별한 조사를 하지 않고 다른 부처로 파견했다. 이 사건은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이 지난해 말 투서를 받고 조사에 착수함에 따라 알려지게 됐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불륜관계뿐 아니라 상하이 총영사관 일부 자료의 유출 사실도 확인해 외교부와 지경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그 선에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려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 개인의 치정 문제라며 조용히 덮으려 한 게 드러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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