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배구, 생사의 갈림길

중앙일보

입력

한때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남자 실업배구가 좌초될 위기를 맞았다.

LG화재는 지난달 29일 올초 삼성화재가 싹쓸이 스카우트한 선수 4명을 포기하지않는 한 구단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순수 아마추어리즘으로 돌아갈 뜻을 밝혀 본격적인 실업팀간 경쟁체제에서 한발 물러날 것임을 암시했다.

수억원씩 들어가는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포기하고 취업차원에서 입단을 희망하는 선수들만으로 팀을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게다가 공동전선을 펴온 현대자동차도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조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막판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남자실업배구의 4강 체제는 4년만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LG화재는 삼성화재와 동종업계 경쟁사인 관계로 '더 이상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임원진 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직 직원들에게까지 강하게 작용, 웬만한 타협안으로는 협상이 불가능할 전망이다.

결국 실업팀들이 2년간 요구해온 드래프트를 하루 아침에 철회한 대한배구협회(회장 최수병)의 졸속행정과 4개 구단의 합의사항을 깨고 선수를 스카우트한 삼성화재의 독선이 전체 배구계의 몰락을 부채질한 셈이다.

문제는 현재로서 남자실업배구의 별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구협회가 LG화재와 현대자동차를 설득하기도 어렵거니와 자신들을 믿고 따라온 삼성화재에게 더 큰 양보를 요구한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법은 지금이라도 실업 4개구단과 배구협회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열린 가슴으로 타협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 배구협회와 삼성화재는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적극적인 양보안을 제시해야 하고 현대자동차와 LG화재도 `제맘대로 안되면 팀을 망가뜨리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라 선수와 팬을 고려한 화해도출에 애를 써야 한다.

LG화재와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배구계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구단이기주의로 드래프트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여 인기있는 종목을 하루 아침에 망가뜨리는 성급한 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기를 팬들은 원하고 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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