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영업정지 전 자체 휴업 … 도민저축, 황당한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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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3일 영업정지된 도민저축은행의 강원도 춘천 운교동 본점을 찾은 예금자들이 철문 사이로 붙어 있는 영업정지 안내문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한국 금융사에 남을 ‘이색 풍경(?)’이 만들어졌다. 강원도 춘천을 본거지로 한 도민저축은행 얘기다.

 도민저축은행은 이날 아침 안내문을 내걸었다. 안내문에는 “예금인출을 진정시키고자 당분간 휴업하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다. 덧붙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까지 올리고, 우량한 저축은행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저축은행 사태로 예금인출이 몰리자 자체적으로 문을 닫아 건 것이다. 금융회사가 내줄 돈이 바닥나 영업정지를 당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고객의 예금인출을 진정시키겠다며 자체적으로 휴업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현장에서는 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전날 춘천 본점에서 대기표를 받고 돌아갔던 고객 100여 명은 은행 직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금융당국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밤 긴급소집된 임시 금융위에서는 3시간 가까이 격론이 벌어졌다. 회의에서는 도민저축은행에 대해 강경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는 결국 이날 밤 “감독당국과 사전 협의 없이 자체 휴업을 결정한 것은 예금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했다”며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급기야 책임 공방이 일어났다. 일단 과실은 은행 측에 쏠렸다. 도민저축은행 측은 “자체 휴업을 통해 일단 유동성을 넘긴 뒤 영업을 재개할 계획이었는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의 한 관계자는 “강원도의 경우 지역별로 지점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고객 설득이 잘돼 왔던 곳”이라면서 “그런 특성 때문에 고객들이 따라줄 것으로 은행이 오판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민저축은행만 비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17일 금융당국이 BIS 비율 5% 미만 은행으로 도민 등 5곳의 저축은행을 지목하면서 이들의 붕괴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얘기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당시 “(94개의) 우량저축은행과 다른 은행을 명확히 구분해서 얘기하는 것”이라면서 “도민의 경우 아직 검사가 완료되지 않아 상황을 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우량저축은행을 보호하기 위한 저축은행 편가르기가 결국 금융회사 자체 휴업이라는 황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예금인출 사태가 다소 주춤한 23일 저축은행 중앙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도민저축은행에 대한 동정론도 커졌다. 한 관계자는 “어떻게든 하루만 더 버텼어도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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