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파 영어 말하기 실력, 해외파 부럽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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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청심국제중에 합격한 황재원(서울 대곡초 6)양은 영어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고, 발음도 원어민 못지 않게 유창하다. 얼마 전엔 대한민국 ESU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은상도 차지했다. 그런데 황양은 해외 어학연수 한번 가본 적 없는 순수 토종파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이모가 사는 캐나다에 다녀온 경험이 전부다.

6세에 처음 영어공부 시작해

황양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영어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 박정화(40· 강남구 대치동)씨는 “유아기 때는 마음껏 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성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조금 늦게 시작해도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전폭적으로 도와주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때때로 5세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유창하게 영어문장을 구사하는 주변 아이들을 볼 때는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들에게 노하우만 물어보며 나중을 대비했다.

이런 박씨의 교육방식은 황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6세 10개월이 돼 처음 본 영어 비디오에 황양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어를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한두 편씩 볼 수 있는 영어 비디오 속 발음과 몸짓을 황양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교재는 주위의 입소문도 듣고 교육매체의 추천상품도 참고해 다양하게 선택했다. ‘매직스쿨버스’ 시리즈부터 ‘리틀베어’ ‘까이유’ 등의 작품을 몇 번씩 돌려봤다.

 6세 수준에 맞는 영·미 명작 영화도 다양하게 섭렵했다. ‘빨강머리 앤’이나 디즈니 시리즈 같은 작품을 골라 영어자막이 있는 상태로 여러 번 반복해 돌려봤다. 내용을 외울정도로 반복한 뒤엔 자막을 없애고 몇번이고 다시 봤다. 박씨는 “아이가 같은 비디오를 여러 번 보게 되니 영어자막만으로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한글 자막은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양은 이렇게 4개월 가량 집중 학습을 한 뒤 7세 때 영어유치원을 1년간 다녔다. 그리고 1년 뒤 치른 레벨테스트에서 또래 아이들이 2년간 공부한 만큼의 수준을 건너뛰었다는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주3회 말하기 수업…다양한 대회출전도 유용

“읽기와 쓰기 실력보다 말하기 실력 키우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하고 싶은 말의 어휘를 떠올려 바로 이어 문장을 구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황양은 초등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말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자유롭게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영화를 보며 읽기·듣기·쓰기·말하기의 전 영역을 고루 살펴보는 데 중점을 뒀다. 유독 말하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전까지 다니던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말하기 실력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황양은 학원을 고르는 기준으로 ▶숙제가 많지 않을 것 ▶해외 유학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을 것 ▶영어 말하기 위주로 수업이 구성될 것을 정했다. 영어토론과 발표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학원을 고른 황양은 그곳에 4년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자신이 모르는 단어를 사용해 유창하게 말하는 친구들의 표현을 따라 하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법과 말하기 방법을 익혀나갔다. 황양은 “주 3회씩 미국 학교 수업과 똑같이 공부하며 토론하고 배운 내용을 요약, 발표했다”며 “공부해야 할 양이 많지 않고 숙제도 없어 부담 없이 다니며 말하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말하기 대회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르기 3주 전부터 시험의 특징을 분석하고 꼼꼼하게 준비해 도전했다. 주제를 직접 골라 에세이를 작성한 뒤 대본을 외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말하는데 중점을 뒀다. 가족들도 도왔다. 남동생은 관객이 됐고 아빠는 시선 처리 방법과 몸짓을 조언했다. 남들에 비해 독특하게 부각되기 위한 이벤트도 기획했다. 황양은 “민족주의가 주제였던 말하기 대회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크게 소리치며 발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가정에서 영어 학습을 꾸준히 지원하고, 영어 사용 환경을 만들어주면 충분히 실력이 향상된다”며 “다양한 대회에 도전하면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준비과정에서 실력이 부쩍 향상되므로 활용해 보라”고 권했다.

[사진설명] 황재원(왼쪽)양은 “엄마(오른쪽)가 영어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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