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범사회적 경찰개혁위원회 구성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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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은 공권력의 말단(末端)이다. 일반 국민이 가장 먼저, 가장 가깝게 접하는 국가의 실체적 권위다. 그래서 경찰은 ‘법치(法治)의 촉수(觸手)’라고 한다. 그런 경찰이 지금 나락에 떨어진 형국이다. 전직 경찰청장이 비리로 구속되고, 전투경찰에는 가혹행위가 횡행하며,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간부가 보험금을 노리고 모친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조직의 꼭대기부터 간부, 맨 아래 전투경찰에 이르기까지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진 것이다. 이래서야 앞으로 누가 경찰을 신뢰하겠는가. 경찰이 신뢰를 잃으면 실추된 공권력은 누가 세우나. 그야말로 ‘경란(警亂)’의 상황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불법과 부패에 둔감한 경찰의 조직문화다. 그런 점에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분노보다 허탈한 심정이 앞선다. ‘미스터 폴리스(Mr. Police)’가 고작 건설현장 식당 브로커의 ‘용돈’에 놀아났다. 무려 17차례에 걸쳐 1억8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꼬리가 밟히자 브로커에게 해외 도피를 종용했다. 사법고시 출신 경찰 총수가 이렇게 법을 농단(壟斷)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바른 경찰상(像)이 뿌리내릴 수 있겠나. 이러니 총경급 50여 명도 아무런 범죄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브로커와 접촉한 것 아니겠나.

 경찰대 출신 간부가 ‘패륜 완전범죄’를 꾀한 것은 개인의 일탈(逸脫)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런 극악한 범죄자는 경찰대 교육과정에서 걸러지고, 근무과정에서도 체크돼야 하는 것이다. 미국 경찰은 교육과정에서 반(反)사회적 성향이 드러나면 곧바로 퇴교(退校) 조치하고, 임용되고 나서도 정기적으로 정신심리를 점검한다. 반면 우리 경찰은 본연의 자세보다 승진과 자리보전에만 매달려 성적과 실적지상주의에 매몰된 것은 아닌가.

 결국 이런 분위기가 일선 전투경찰대에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다. 윗물이 흐린데, 어찌 아랫물이 맑을 수 있나. 그래서 알몸 가혹행위로 문제가 된 전투경찰대에서 여전히 불법 학대가 횡행하는 것이고, 이는 만연한 불법불감증 조직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조현오 경찰청장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그는 경찰의 인사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 청탁한 직원 명단을 공개한 장본인이다. 또 문제의 307전투경찰대를 즉각 해체하는 등 강한 추진력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치유하기에는 병이 너무 넓고 깊다. 자정(自淨)도 자칫 백년하청(百年河淸)으로 흐를 수 있다. 지금은 경찰의 조직문화에서 시스템까지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시급한 상황이다.

 차제에 범(汎)사회적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비리의 근원이 처우(處遇) 때문이라면 예산의 뒷받침이, 조직 선진화에 수사권이 걸림돌이라면 법체계 정비가, 인사시스템을 정비하려면 행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전문가·시민이 함께 지혜를 짜내야 한다. 법치주의 정립(定立)에 경찰 신뢰 회복은 필수적이다. 비상(非常)한 상황에 처한 경찰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찬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