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에게 ‘새 삶’주고 간 린다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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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던 미국인 여성이 뇌사 상태에 빠지자 자신의 장기를 한국인들에게 기증하고 생을 마쳤다. 국내에서 뇌사 상태의 서양인이 장기를 기증한 것은 처음이다. 100만 명당 장기기증자가 미국에서는 35명에 달하지만 한국은 5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5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경기도 의정부 소재 국제크리스찬외국인학교 교사인 미국인 린다 프릴(Linda Freel·52·사진)은 지난 20일 수업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같은 학교 교장인 남편 렉스 프릴은 부인의 뇌사 하루 만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14년 전 함께 한국에 와 교육·선교 사업에 힘써 온 부인의 평소 뜻에 따른 것이다. 프릴은 21일 오후 간·신장·각막 등에 대한 장기적출 수술을 받고 이튿날 새벽 영면했다.

 고인의 신장은 적출 즉시 두 명의 만성신장질환자에게, 간은 간 질환자에게, 각막 2개는 각막혼탁 환자들에게 각각 이식됐다. 프릴의 뼈·피부조직은 뼈의 길이가 짧거나 화상을 입은 환자 등에게 이식하기 위해 보관 중이다. 고인의 장기기증을 통해 새 삶을 얻은 환자들은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며 건강상태도 양호하다.

 장기를 이식할 때 의학적으로 인종 차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울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는 “눈 색깔은 홍채에 의해 좌우돼 각막 이식에는 문제가 없다”며 “국내 각막 이식수술의 3분의 1은 외국인 각막을 이용해 실시된다”고 말했다. 간 이식도 기증자 간의 크기가 이식 대상자 간의 50∼200% 이내라면 인종·성에 관계없이 가능하다.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권준혁 교수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동양인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할 경우 백인·흑인 등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이식된다”며 “간은 혈액형, 신장은 조직 적합성이 서로 맞지 않으면 이식이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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