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타계] 서점가에도 인터넷서도 ‘벌써 그리운 선생님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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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었다.”

 23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허은심(45·여)씨와 딸 방수진(14)양이 박완서 특별전 코너에 섰다. 모녀는 고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바로 서점으로 나왔다. 허씨는 고인의 데뷔작인 『나목』부터 주요 작품을 탐독했던 팬이었고, 딸도 교과서에서『자전거도둑』 발췌 글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허씨는 “고인의 작품엔 6·25전쟁 등 한국의 역사가 잘 녹아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아이들이 책을 본 후에 고인이 그랬던 것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대형서점에 마련된 특별전 코너는 고인을 기억하는 독자들로 북적댔다. 10대 청소년부터 50~60대 중장년층까지 세대와 성별의 구분이 없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경우 평소 4~5부 팔리던 책이 22일 하루에만 50부가 팔렸다.

소설 담당 전설라(25)씨는 “아동도서부터 소설, 수필집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라고 밝혔다. 주부 홍양숙(50)씨는 “고인의 책을 보면 마치 부모님한테 어린 시절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친정엄마 돌아가신 것처럼 그 시절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섭섭하다”고 말했다. 중학생 유나현(15)양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주변의 따돌림을 이겨낸 주인공처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싶다”고 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박씨가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완서 신드롬’에 비유할 만하다. 아이디 ‘antoin***’씨는 “배려와 사랑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어른 한 명을 잃었다. 그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슬픔과 고난을 이겨낼 용기와 힘을 북돋아 준 어른이었다”고 올렸다. 또 고인이 활동했던 NGO단체 유니세프도 홈페이지에 추도사를 띄워 “소말리아 난민촌, 몽골의 오지 등에서 어린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오드리 헵번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각계각층에 부는 박완서 추모열기를 주목했다. 이시영 시인은 “우리 사회가 휴머니즘에 목말라 있을 때 박완서의 소설은 시대와 이념을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조국 (법학과) 교수도 “전쟁의 상처, 여성의 억압이란 주제를 대중적으로 다뤘다. 전쟁 등 삶의 고통을 몸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공감하고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은·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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