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엔 형님이, 60년엔 아우님이 아시안컵 품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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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 기념사진을 들고 있는 박경호(오른쪽)·경화 형제. [양주=김민규 기자]

“그래 기억 난다. 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

 전 축구대표 박경호(82)·경화(72) 형제가 55년 전 사진과 마주했다. 그들 앞에는 1956년 한국 축구대표팀이 제1회 홍콩 아시안컵 우승 직후 찍은 흑백의 기념사진이 있었다.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이 사진은 56년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고(故) 김성간씨의 아들 김영백씨가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다. 김씨는 중앙SUNDAY에 실린 북한 축구 기념품 기사(본지 2009년 12월 27일자)를 보고 “축구박물관이 생기면 함께 보관해 달라”며 아버지의 유품과 사진을 축구수집가 이재형씨에게 보냈다. 형 박경호 선생은 56년 아시안컵에서, 동생 박경화 선생은 60년 아시안컵에서 각각 대표로 활약했다. 한국은 56년과 60년에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일 박경호 선생 집에 모인 형제는 사진을 보며 당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박경호 선생은 “이 사진이 남아 있는지 몰랐다. 함께 우승했던 동료는 대부분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감회에 잠겼다.

 첫 아시안컵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3년 뒤에 열렸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직원이 세 명뿐이었고,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표도 외상으로 샀다. 박경호 선생은 “지금과 달리 대표팀 지원이 좋지 않았다. 경기 중 다치면 상대 의무팀이 와서 치료를 해줬다. 상금도 없었지만 나라의 명예를 걸고 정신력 하나로 뛰었다”고 떠올렸다. 한국은 홈팀 홍콩과 비기고(2-2), 이스라엘(2-1)과 베트남(5-3)을 꺾고 우승했다.

 박경화 선생은 60년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안컵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그는 “내가 대표팀의 막내였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대회라 엄청난 관중이 효창운동장에 몰렸다. 관중에 압도된 상대 선수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베트남(5-1)과 이스라엘(3-0), 대만(1-0)에 3연승을 거둬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은 51년 동안 우승이 없다. 박경화 선생은 “내 나이가 일흔이 넘을 때까지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못 했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형제는 “ 후배들이 이란을 꺾고 우리가 이뤘던 영광을 재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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