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쟁-변함없는 미국의 좌우명

중앙일보

입력

지난 주말 매스컴을 도배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연방법원의 '독점' 판정은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두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시장원리' 와 '법제도' 다.

시장원리의 기본은 경쟁이다. 그러나 자유경쟁은 대개 독점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시장원리의 기본에 어긋난다는 게 문제다.

"윈도의 시장 석권은 경쟁의 결과" 라는 MS의 주장에 "결과적 독점도 독점이고, 결국은 소비자의 이익에 반한다" 고 일축한 토머스 잭슨 판사의 발언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경쟁을 가로막는 어떤 독점적 행태도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인식이 배어 있는 것이다.

19세기말 반독점법 도입 이후 도마에 올랐던 철강.철도회사들과 스탠더드 오일, AT&T와 IBM, 그리고 MS 등의 기업들이 모두 당대의 최첨단.최대 기업이었다는 사실도 시사점이 많다.

미국의 자부심이자 간판 기업을 손대는 아픔을 감수하고라도 경쟁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오늘날 다양한 신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번창할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의 이런 선택이 자리잡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반독점법의 적용이 엄격한 법 절차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임의로 독점 여부를 재단해 시정조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표적' 이나 '사정' 같은 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미 법무부의 반독점국은 공익을 대표한 소송의 한 당사자일 뿐 기업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법원은 수많은 청문회와 증언, 방대한 자료수집 과정을 통해 양측의 주장을 충분히 듣는다. 때로 이 과정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길어지기도 한다. IBM에 대한 반독점소송은 무려 12년을 끌다 중단됐다.

이런 절차를 하나씩 거치는 동안 시장원리에 대한 인식과 여론이 자연스레 수렴되고, 이렇게 얻어진 결과에 대한 승복도 당연하다. 합리적으로 운용되는 법제도에 대해 미국 사회는 신뢰를 보내고, 법원의 판단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간주되는 것이다.

MS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어떻게 결말날지 단정하긴 아직 이르다. 다만 이 역사적인 소송이 어쩌면 미국 사회가 MS라는 20세기 최후의 위대한 기업을 뒤로 하고 21세기 새로운 간판기업의 태동을 준비하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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